뉴욕 문명과 고국의 향수… 단색으로 다리를 놓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원로 작가 임충섭 화백(76·사진)은 충북 진천에서 성장한 어린 시절 기억을 살려 달과 말, 누에고치, 우물, 창호 등과 같은 생활 소재를 작품 속에 끌어들였다. 이런 한국적 오브제를 사운드나 빛 등 현대적 매체와 결합시킨 독특한 작품은 단번에 국제 화단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미니멀리즘이라는 서구적인 조형어법과 한국 고유 정서가 담긴 전통적인 삶의 공간에 대한 깊은 향수, 자연에 대한 동경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게 주효했다.

한국 설치미술의 선구자 임 화백이 다음달 7일까지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펼치는 개인전은 진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 서구미학과 전통을 아우르며 이국땅에서 펼쳐온 작품 활동이 얼마나 치열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1, 2층 전시장을 채운 30여 점의 작품은 1970~1980년대 미국에 건너가 매달린 회화 작품(20점)과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변형된 캔버스 근작(10여 점)이다.

8일 전시장에서 만난 임 화백은 담백한 작품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눈빛만은 형형했다. 첨단 문명과 순수한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국적인 전통에 천착한 작가는 “뉴욕에선 미술인생의 마지막 희망이 별처럼 빛난다”고 했다.

“처음 뉴욕에 발을 디뎠을 때는 휘황찬란한 분위기가 좀 그랬는데 요즘은 그 시절이 그립네요. 햄버거를 몇만 개나 먹었지만 내 몸에선 여전히 된장 냄새가 납니다. 지난 40여 년간 작업하며 동양 작가의 정체성이 확연해졌고 동양적 사색의 깊이가 공고해졌습니다. 그걸 다져온 저로서는 오히려 차분하게 버티며 증언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 전시된 임충섭 화백의 2016년작 부조형회화 ‘채식주의자’. 현대화랑 제공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 전시된 임충섭 화백의 2016년작 부조형회화 ‘채식주의자’. 현대화랑 제공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1973년 뉴욕으로 이주한 임 화백은 뉴욕 브루클린 미술학교, 아트스튜던트리그와 뉴욕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미국 유수의 도로시 골딘갤러리와 샌드라 게링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1993~1994년 뉴욕주립대 부설 뉴버거미술관에서 ‘다른 시각들’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어 뉴욕 화단의 격찬을 받았다.

작가는 뉴욕에서 살면서도 고향의 기억과 자취를 무던히 좇아왔다. 도시사람들이 자본주의적 욕망을 감추려들 때 임 화백은 대도시와 그를 둘러싼 자연환경에서 포착한 생각을 회화나 3차원 형태로 형상화해왔다.

그가 자신의 전시회 제목으로 내세운 ‘단색적 사고’는 대도시와 자연 속에서 수직과 수평, 긴장과 이완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이 ‘소실점’을 기준으로 집중됐다가 흩어지는 ‘풍경의 줄임’을 은유한다. 그의 1970~1980년대 추상화는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를 비롯해 소몰이 소리, 말의 울음소리 같은 다양한 풍경을 압축해서인지 사유와 관조의 힘이 짙게 배어나온다. 그는 “액자를 제작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영감을 받았다”며 “어떤 대상을 보고 그리는 그림(look and draw)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리는 그림(think and draw)”이라고 귀띔했다.

백남준 선생 이웃에 살며 자극을 받아 사각 캔버스를 부수고 부조형 설치회화를 시도한 작품들도 가시적인 소재보다는 풍화된 기억과 생각을 흰색 또는 미색 계열로 채색한 작업이다. 그는 “내 작품은 현대 도시문명과 자연, 그 사이에 놓인 시각적 해학이자 영혼적 건축물”이라며 “인공물이 아니라 자연을 크게 확대해 수놓은 설치작업으로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수만 번의 반복 행위를 통해 수평적이고 직선적인 단선을 가득 메운 화면은 수행적·명상적 분위기 때문인지 부조형 단색화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전시장 1층 바닥에 설치한 ‘잠두마미(蠶頭馬尾)’는 한자 ‘일(一)’을 세 번 겹쳐놓은 작품이다. 그는 “서예의 서체가 누에 머리에서 시작해 말꼬리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며 “붓에 먹을 묻혀 글씨를 쓰는 서예의 원리를 흙을 사용해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세 개의 조그만 타원형으로 이뤄진 ‘채식주의자’는 스님의 식생활에서 힌트를 얻었고, ‘지붕’은 고향에서 본 한옥을 재현했다. 뉴욕에서 보름달을 보고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려낸 ‘백야’에서는 동양적 사색의 깊이가 느껴진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