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태 씨의 ‘빛이 드는 공간’.
황선태 씨의 ‘빛이 드는 공간’.
인간에게 암흑은 공포에 가깝다. 한 줄기 빛은 이런 극도의 공포감을 단번에 녹여버린다. 암흑의 터널을 지나 정제된 빛의 세계로 진입한 기분은 마치 깊은 우물에서 사유를 가득 길어 올린 느낌이다.

빛을 인간의 감성과 사고에 파고드는 미학으로 승화시킨 황선태 씨(45)는 없어서는 안 될 비타민 같은 상징으로 빛을 그린다. 경희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독일 할레 북 기비센슈타인 미대를 졸업한 그는 2010년부터 빛에 빠져들었다. 다른 화가들이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듯 그는 마치 연금술사처럼 빛을 주물러 유리판에 사물을 새겨 놓는다.

지난 24일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시작한 그의 개인전 ‘빛, 시간, 공간’은 그동안 빛에 대한 탐구와 열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전시장 1층과 지하 1층에는 유리와 LED(발광다이오드)를 캔버스로 삼고 특정 사물이나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의 특별한 순간을 빛과 선으로 채운 신작 24점을 걸었다.

황씨는 “사물을 최대한 왜곡시키지 않기 위해 빛과 선(line)이란 기본적인 도구를 미술에 활용하고 있다”며 “LED 조명에 의한 빛으로 사물의 허구와 실제의 간극을 파고들었다”고 했다.

실제 공간과 사물을 선만으로 간결하게 표현한 유리 화면은 스위치를 켜는 순간 은은한 빛을 발산하며 서정적이고 시적인 분위기로 전환된다. 다양한 실내공간이지만 정작 인간이 사라진 자리에 사물들만 주인공처럼 서 있다. 인간이 규정한 법칙과 관념에 사로잡힌 세계에서 빠져나왔을 때 문득 접하게 되는 사물의 민낯이다.

강렬하지도 않은 빛은 끊임없이 시간과 공간을 들락거린다. LED 조명은 2차원적인 선들과 만나면서 입체감 있는 공간을 창출해낸다. 동시에 평면과 3차원의 공간 사이에 머무르는 익숙하지만 생경한 상황을 연출해낸다.

황씨는 “다양한 실내 풍경은 자신의 자잘한 이야기와 경험”이라며 “빛 속에서 존재감을 더 부각시키려 사람을 지워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업은 유리 공예와 회화, 사진, 영상 장르를 복합적으로 아우른 종합아트라는 점에서도 색다르게 다가온다. 붓으로 색을 칠하지 않고 LED조명과 사진을 활용해 영상미를 가미했기 때문이다. 전시는 다음달 27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