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저커버그·마윈·잡스의 공통점은? 인문학도!
연극을 전공한 케이틀린 글리슨은 무명 배우로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배우로서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던 그는 헬스케어 기업에 세일즈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헬스케어에 대해 점차 지식을 늘려가던 그는 병원이 환자의 건강보험 보장 범위를 확인하고 서류작업을 하는 데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는 이를 손쉽게 해결하는 솔루션을 만들겠다는 대담한 결심을 했다. 프로그래밍을 담당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모으고 엘리저블이라는 회사를 세워 투자자를 찾아 나섰다. 2500만달러의 자금을 모은 엘리저블은 2013년 제품 출시 후 매주 60%의 매출 증가를 보이며 날아올랐다. 케이틀린은 2015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헬스케어 분야 30대 혁신가’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케이틀린처럼 인문학 학위를 갖고 혁신 기술분야에서 성공한 사례는 매우 많다. 페이팔의 공동 설립자인 피터 틸은 철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에어비앤비 설립자 조 게비아와 브라이언 체스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애플을 설립한 스티브 잡스도 인문학도였다.

한국에서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불붙고 있지만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미래 기술 주도 경제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인식은 여전하다. 벤처 캐피털리스트이자 세계적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자문가인 스콧 하틀리는 《인문학 이펙트》에서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이야말로 빠르게 진화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꼭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훌륭한 기술 뒤에 뭐가 있는지 베일을 들춰보면 이 기술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인간성임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는 코딩이 엄청나게 빠른 괴짜 천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문교육과 토론 수업으로 유명한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고교과정)를 나왔고 하버드대에서는 심리학을 공부했다. 그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타고난 욕망을 꿰뚫어보고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만들었다. 페이스북은 ‘인간적 요소’에 대한 전문적 이해를 바탕으로 기술이 지원사격을 한 성공 사례라는 것이다.

저자는 인문학도가 기술 주도 경제의 많은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게 된 원인으로 첨단 기술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점을 꼽는다. 컴퓨터 사용이 점점 쉬워져 세 살배기도 태블릿PC를 쓸 수 있게 됐고, 프로그래밍에 관한 지식이 없어도 간단한 저작 도구를 통해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다. 서버 운용에 대한 기술적 사항을 이해하지 못해도 아마존 웹서비스 같은 클라우드 업체를 통해 거대한 데이터 저장 장치를 구매할 수 있다. 기술적 전문지식 없이도 훨씬 더 쉽게 기술분야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창의적이고 효율적으로 기술 전문가들과 협업해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 혁신을 주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문학과 기술은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어야 할 동반자”라고 강조한다. 인류학과 데이터 과학이 만난 ‘데이터 문해력’, 문학과 컴퓨터가 합쳐진 ‘서사 과학’과 같은 인문-기술 연계 전공이 더 생겨나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