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흥인동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다음달 29일까지 공연하는 창작 뮤지컬 ‘벤허’.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다음달 29일까지 공연하는 창작 뮤지컬 ‘벤허’.
로마의 함대가 해적 습격을 받는 영화 ‘벤허’의 한 장면. 거친 파도에 배가 좌우로 요동치고 배 안으로 물이 들어차 아수라장이 된다. 무대라는 제약된 공간에서 모든 걸 보여줘야 하는 뮤지컬 ‘벤허’는 이 장면을 어떻게 구현했을까. 왕용범 연출은 관객과 배우 사이에 반투명 스크린을 내리고 거기에 바다가 요동치는 장면을 투사했다. 배우들은 반투명 스크린 뒤에서 요동치는 배에 타고 있는 것처럼 연기했다. 스크린 뒤로 보이는 배 모양 무대장치는 실제로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런 영상과 겹쳐지자 요동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종의 착시 효과를 재치있게 활용한 셈이다.

이 뮤지컬은 미국 정치가이자 군인이었던 루 월러스가 1880년 내놓은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 국내에서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1959년 발표한 영화로 더 잘 알려졌으며 지난해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이 리메이크 영화를 내놨다.

다음달 29일까지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벤허’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성공시킨 왕 연출과 이성준 음악감독이 3년 만에 다시 의기투합해 세계적 고전 원작을 국내 순수 창작 뮤지컬로 제작했다.

스토리는 원작 그대로다. 귀족 가문의 장손인 주인공 유다 벤허가 어린 시절 친구 메셀라의 배신으로 순식간에 노예로 몰락한 뒤 그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와는 다른 무대 공연만의 매력을 입힌 게 특징. 해적과의 전투 뒤 로마 함대를 지휘하던 장군 퀸터스가 바다에 빠지고 벤허가 그를 구해내는 장면도 인상 깊다. 수중촬영 영상을 무대 전면의 스크린에 투사해 무대에 물이 들어찬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왕 연출가는 “실제 영화 세트장을 빌려 배우가 수십 번의 다이빙을 반복한 끝에 얻은 장면”이라고 소개했다.

이 뮤지컬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벤허와 메셀라가 벌이는 전차 경주 장면이다. 왕 연출은 빠르게 움직이는 경주장 영상을 배경으로 두 배우를 태운 마차 세트를 무대 위에서 회전시켰다. 로보틱스와 생물학 전문가에게 자문해 말이 살아 있는 것처럼 실감나는 움직임을 연출했다. 영상과 세트의 움직임이 조화를 이루고 여기에 비장한 음악이 곁들여지니 영화 못지않은 속도감이 살아났다.

‘액션 뮤지컬’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액션 영화’에서처럼 이 작품은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해상 전투와 전차 경주 장면 외에도 16명의 배우가 로마 깃발을 들고 군무하는 장면, 서커스하듯이 불이 붙은 소품을 들고 춤추는 장면 등이 눈길을 붙잡는다. 5만~14만원.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