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황제 때 만들어진 병마용갱
시황제 때 만들어진 병마용갱
우리에게 장안으로 잘 알려진 중국 산시성 시안은 실크로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13개 왕조의 도읍이자 한때 당나라의 수도 장안이기도 했던 시안을 대표하는 유적은 병마용갱. 중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던 진시황제의 정예부대를 정교한 조각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현종과 양귀비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깃든 화청지, 옛 실크로드의 번성과 영화를 증언하는 회족거리 등도 최강 제국 당나라와 찬란한 중국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 중국 오악(五岳) 가운데 한 곳인 화산과 현종, 왕희지, 안진경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비림도 시안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장안의 풀로 태어나는 것이 변방의 꽃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도시 시안에서 중국 최고의 문화를 만나보자.

시안=글,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ssoochoi@naver.com

병마용갱, 세계 8대 불가사의

중국 산시성의 성도인 시안(西安)은 약 3000년의 오래된 역사를 지닌 도시다. 역사상 서주, 진, 서한, 신망, 동한, 서진, 전조, 후진, 서위, 북주, 수, 당 등 역대 13개 왕조가 이곳 시안을 도읍으로 삼았다.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와 육국을 통일한 진시황, 항우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한 고조도 이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그리스 아테네, 이탈리아 로마, 이집트 카이로와 함께 세계 4대 고도(古都)로도 꼽힌다.

시안은 우리에게 당나라의 장안(長安)으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당나라는 세계 최강 제국으로 인구가 200만 명에 육박했을 정도로 번성했다. 온 세계에서 사신과 상인들이 몰려드는 국제도시였고, 외국에서 방문하는 사신만 해도 연간 수천 명에 달했다. “구중궁궐 대문이 활짝 열리니, 만국 사신들이 황제에게 절을 올리네.” 당나라 전성기인 8세기에 활동한 시인 왕유가 수도 장안을 묘사한 시구다. “장안의 풀로 태어나는 것이 변방의 꽃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도시가 바로 시안이다.

시안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과 같다. 중국의 첫 통일왕조인 진나라 시황제 때 만들어진 병마용갱을 비롯해 당나라 측천무후 때 세워진 대안탑, 당 현종과 양귀비가 노닐었던 화청지 등이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들 유적 가운데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병마용갱과 진시황릉이다.

병마용갱의 발견은 우연이었다. 1974년 3월29일 시안시 외곽, 양신만(楊新滿)이라는 사람은 우물을 파다가 ‘쨍’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소리가 이상해 땅을 더 파고 들어가니 토기 파편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그가 발견한 것은 바로 진시황의 병마용 종장갱(從葬坑·부장품을 넣어둔 구덩이)이었다. 2200년 동안 땅속에서 잠자고 있던 진나라 대군들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1976년 1호갱의 북쪽에서 2호갱과 3호갱이 연이어 발견된다. 1~3의 숫자는 발굴 순서에 따라 붙인 것으로 가장 큰 1호갱은 길이 230m, 너비는 62m에 이른다.

클린턴, 푸틴 등 세계 지도자들이 관람

1호갱에 들어서면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정면을 바라보며 도열해 있는 6000여 기의 병사들 앞에 서면 아, 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조각 하나하나의 표정이 제각기 다르고 생생해서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 병마들은 그 옛날 한, 위, 초, 연, 조, 제 등의 나라를 차례로 멸망시키고 중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진시황제의 정예부대들이다. 병사들은 모두 전방을 향해 서 있는데, 특이한 점은 이들의 손에는 무기가 없다는 것. 한나라 항우가 진나라를 침범했을 때 무기를 모두 가져가 자신들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병마용의 배치와 배열은 중국 고대 병종의 배치 및 병기장비, 전략과 전술을 잘 보여주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매우 크다고 한다. 1호갱에서 20m 떨어진 곳에 있는 2호갱은 보병, 기병, 궁노수, 전차 등 각종 병과가 모두 모여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1호갱과 마주한 3호갱은 지휘부대가 회의하는 모습의 병마들이 있다.

병마용갱 앞에는 발굴품을 전시하는 진시황병마용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유명한 청동마차도 보관돼 있다. 진시황 사후 2200년이 지나 발견된 것으로 네 마리 말이 끄는 이 마차는 발굴 당시 완전히 깨진 상태였는데, 1980년부터 8년간에 걸쳐 1000여 개에 달하는 조각들을 이어붙여 복원했다고 한다. 크기는 실물의 절반 정도인데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을 보면 당시 주조기술의 높은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병마용갱의 발견은 중국을 놀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세계 각 나라의 지도자들도 병마용을 관람했는데,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1978년 병마용을 관람하고는 “현존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진시황 병마용의 발견으로 인해 8대 불가사의가 됐다”며 “피라미드를 보지 못했으면 진정으로 이집트를 여행한 것이 아니고, 병마용을 보지 못했다면 진정으로 중국을 여행한 것이 아니다”고 극찬했다.

진시황릉은 병마용갱에서 약 1.5㎞ 떨어져 있다. 기원전 246~208년 36년에 걸쳐 70만 명이라는 대인원이 동원돼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높이 76m, 동서 폭 345m, 남북 길이가 350m에 이르는 능 앞에 서면 마치 커다란 산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발굴이 되지 않아 그냥 멀리서 능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양귀비와 당 현종의 애틋한 사랑

화청지(華淸池) 역시 시안을 찾은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당나라의 왕실원림이었던 화청지는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눴던 곳으로 6000년 동안 마르지 않고 43도의 온수가 나오는 온천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서주(西周) 유왕(幽王) 때부터 이곳에 탕을 만들었고 총 9명의 황제들이 이곳을 피한지로 삼았다고 한다. 다양한 온천탕은 물론 양귀비가 머리를 말렸다는 건물도 볼 수 있다.

화청지는 또 다른 중국 근대사의 큰 사건인 1936년 시안사건(서안사변)의 현장이기도 하다. 시안에 주둔하던 동북군 총사령관 장쉐량이 이해 12월12일 이곳에 머물고 있던 총통 장제스를 급습해 체포한 뒤 홍군 토벌 중지 및 항일전쟁을 위한 제2차 국공합작을 종용했던 것이다.

저녁 무렵, 화청지에서 열리는 뮤지컬 ‘장한가’는 꼭 보시길. 현종과 양귀비의 애절한 사랑을 읊은 백거이의 ‘장한가’를 소재로 거대한 스케일의 뮤지컬을 공연한다. 화청지 뒤쪽에 자리한 산을 배경으로 화청지의 모든 건물이 무대가 된다. 300명이 넘는 배우들의 화려한 의상과 군무가 관람객의 눈을 매료시킨다.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소재로 한 뮤지컬 ‘장한가’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소재로 한 뮤지컬 ‘장한가’
시안 도심 곳곳에도 볼거리가 널려 있다. 시안 한복판에 자리한 시안성곽은 당나라 성곽을 기초로 명나라 때 다시 만들어진 것. 둘레가 13.6㎞에 달한다. 자전거로도 한 바퀴 돌아보는 데 한 시간 넘게 걸린다. 본래 당나라 장안성은 이보다 일곱 배는 족히 컸다고 전해지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대안탑(大雁塔)은 당나라 고종 때 세워진 탑이다. 모두 7층으로 전체 높이는 64m에 달한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시안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중국 고전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번역한 뒤 보관한 곳으로 유명하다.

비림(碑林)은 말 그대로 비석의 숲. 시안 일대에서 출토된 석각 비문 2000여 개를 한데 모아놓은 곳이다. 당 현종, 왕희지, 안진경 등의 작품도 볼 수 있어 서예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필수 코스로 꼽힌다.

화산, 수묵의 세상을 오르다
중국 오악 중 하나인 ‘화산’
중국 오악 중 하나인 ‘화산’
어렸을 적 무협지를 즐겨 읽었던 30대 이상 세대에겐 ‘화산파’가 익숙할 것이다. 시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중국의 ‘오악’ 중 하나인 화산(華山)이다. 오악은 중앙의 숭산, 동쪽의 태산, 남쪽의 형산, 북쪽의 항산 그리고 서쪽의 화산을 일컫는다.

화산은 중국인들의 정신적 고향으로, ‘중화(中華)’의 ‘화’가 바로 이 화산의 ‘화’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오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제일 높고 산세가 험해 오래전부터 무림 고수들과 수행자들이 즐겨 찾은 곳이다. 도교 문화의 발상지이기도 한 화산에는 총 21개의 도교 유적지가 있다.

산 아래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셔틀버스를 타면 케이블카 입구로 갈 수 있다. 6명이 꼭 붙어 앉으면 꽉 찰 정도로 작은 케이블카를 타면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정상으로 올라간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감히 창밖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아찔하지만 경치만큼은 태어나서 다시 보지 못할 절경이다.

중국에서 만나는 이슬람 문화

 종고루광장 회족거리에서 파는 양꼬치
종고루광장 회족거리에서 파는 양꼬치
시안은 실크로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실크로드란 비단과 도자기를 비롯한 중국 수공예품이 아랍 세계로 전해지던 교역로로 한나라 때 처음 개척돼 당나라 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사람과 물품이 오갔다. 불교와 기독교 전파도 이 길을 통해서 이뤄졌다. 당나라 시절 천축에서 불경 600권을 들여와 불교 중흥을 이끈 현장법사,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횡단하고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 고승 혜초도 이 길을 걸어갔다.

서안 중심에 자리한 ‘종고루 광장’은 서안 시내 중심에 있는 ‘종루’와 ‘고루’ 사이에 위치한 광장으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번화가다. 이곳 뒤편에 있는 회족거리는 옛날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무역을 하던 회족이 자리를 잡고 이뤄놓은 시장이다. 회족은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지만 인구가 900만 명에 달한다. 서안에만 5만~6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 가면 흰 모자를 쓰거나 두건을 두른 회족들이 양꼬치, 해산물 꼬치는 물론 뱡뱡면, 러우자모, 양러우파오모 등 산시성 특색 음식과 호두, 곶감 등 각종 먹거리를 판다. 이슬람 글씨도 곳곳에 눈에 띄어 이국적 느낌을 자아낸다.

여행 메모

대한항공과 중국동방항공은 매일, 아시아나는 수요일과 토요일을 빼고 운항한다. 3시간10분 걸린다. 시안은 토지가 척박해서 밀농사를 많이 짓는다. 주식은 밀로 만든 만두나 국수다. 시안의 만두는 모양이 다양하고 맛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시안 종루 근처에 있는 ‘더파창(德發長)’은 286가지 만두가 나오고, 인근 회족이 모여 사는 야시장도 볼 만하다.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돼지고기를 거의 먹지 않으며 대신 양고기를 즐긴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1년 내내 건조하기 때문에 한여름 폭염도 생각보다 견딜 만하다. 겨울에는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드물고 온난하다. 매년 11월에는 서예를 테마로 한 장안국제서예연회가 개최된다.

시안의 옛 이름인 장안을 따서 전통성을 부여한 이 축제에선 국내외 유명 서예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경매로 팔리기도 한다. 특산물은 당나라 초기에 유행했던 도자기 당삼채와 옥 공예품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