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호모 콘숨멘스'는 어떻게 역사를 바꿨나
‘공장용이 아니라 범용 재봉틀을 만들어 각 가정에 판매하겠다.’

1856년 미국의 재봉틀 제조사 ‘싱어’의 에드워드 클라크 회장은 이같이 결심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가격이 문제였다. 재봉틀은 재봉사 연봉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비쌌다. 중산층 이하 가정에 재봉틀을 팔기 위해선 획기적인 판매 방식이 필요했다.

클라크는 ‘1달러에 계약, 1주일에 1달러 내기’ 마케팅을 떠올렸다. 적은 금액을 일종의 계약금으로 받은 뒤 잔액을 오랜 기간에 걸쳐 나눠 수령하는 식이다. 오늘날 ‘할부제도’의 탄생이었다. 그는 여기에 ‘방문판매’도 결합시켰다. 판매원들에게 직접 고객을 찾아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제품 설명부터 시연, 할부금 수금 등을 맡도록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싱어를 통해 전 세계 일반 가정에 재봉틀이 빠르게 보급됐다. 사람들은 바느질 대신 재봉틀로 편리하게 옷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소비의 역사》는 인간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준 상품부터 판매방식, 공간의 변화를 통해 ‘소비’를 재조명한다. 저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혁명, 전쟁 등 굵직한 사건보다 사소해 보이지만 일상적인 소비를 통해 인간의 역사를 살펴본다.

소비는 역사학계의 통념 탓에 일종의 쾌락으로 간주되면서 주변적 지위와 소재로 밀려났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경제 성장과 함께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2012년엔 영국의 역사학자 프랭크 트렌트만이 “‘호모 콘숨멘스(homo consummens·소비하는 인간)’가 ‘호모 파버(homo faber·만드는 인간)’를 대체했다”고 선언했다. 상류사회 사람들의 복장을 저렴한 버전으로 모방한 기성복, 여성들이 소비와 동시에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한 화장품 아줌마, 공간과 시간을 재구성한 쇼핑몰 등의 등장도 여기에 크게 기여했다.

소비의 이면엔 어두운 면도 숨어 있다. 19세기 말부터 남부 아프리카에 빠르게 확산된 하얀 비누가 대표적이다. 선교사의 가르침에 따라 하얀 비누로 열심히 세수하던 한 어린 학생이 “그런데 선생님은 백인이고, 우리는 아직도 흑인이네요”라고 불평했다는 얘기도 있다. 매일 아침 깨끗이 씻으면 백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자는 “이 에피소드가 황당하게 느껴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위생과 미용업계는 백색 신화를 상품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항과 연대를 한 역사도 존재한다. 설탕거부운동은 노예를 이용해 생산해낸 설탕 섭취를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반대하면서 확산됐다. “우리는 과거 역사를 통해 소비 세계에 수동적으로 포섭된 현대인의 가면을 벗고 진정한 호모 콘숨멘스를 만날 수 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