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신인 작가 이수연이 쓴 tvN 드라마 ‘비밀의 숲’.  CJ E&M 제공

신인 작가 이수연이 쓴 tvN 드라마 ‘비밀의 숲’. CJ E&M 제공

지난달 30일 막을 내린 tvN 드라마 ‘비밀의 숲’과 현재 방영 중인 SBS 드라마 ‘조작’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치밀한 구성과 놀라운 반전을 거듭하는 장르물 드라마로 큰 인기를 얻었다. 또 하나는 ‘이런 작품은 대체 누가 썼지’ 하고 찾아보면 생소한 이름이 나온다는 점이다. ‘비밀의 숲’은 이수연, ‘조작’은 김현정이다. 처음 듣는 신인들이지만 시청률에서 기성 작가들의 경쟁작을 압도적으로 눌렀다. 이뿐만 아니다. ‘쌈 마이웨이’ ‘군주’ 등 올해 상반기 히트작은 대부분 신인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대본을 잘 쓰는 신인들이 갑자기 늘어난 것일까. 이전에도 그런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있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달라진 제작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국내 드라마 제작은 벤처 설립과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한 명의 창작자 주위에 전문가들로 구성된 하나의 팀이 결성된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인큐베이팅을 위해 붙여준 사람들이다. 광고주도 더 이상 기성 작가만을 찾지 않고 투자한다. ‘창작-협력-인큐베이팅-투자’란 벤처의 설립과 성공 과정이 드라마에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한 작품이 하나의 벤처인 셈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신인 작가에겐 편성은 물론 집필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단막극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지상파 방송들과 CJ E&M 등 케이블방송, 스튜디오드래곤과 같은 제작사 모두 신인 작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대본의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원석을 발견만 하면 된다. 이후엔 그를 보완해줄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비밀의 숲’도 마찬가지였다. 작가의 뛰어난 대본 뒤엔 많은 협력자가 있었다. 송진선 스튜디오드래곤 기획팀장은 "비밀의 숲은 재능 있는 신인작가가 몇년 간 내공을 쌓아온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작품이었다. " 며 "가능성 있는 작가와 대본을 만나게 되면 그것을 바탕으로 기획PD등이 팀을 이루어 작가의 집필에 필요한 자료 조사와 기획 등을 최대한 돕고 지원한다. 진짜 재밌는지 대중이 현재 보고 싶어 하는 작품인지만 명확하면 얼마든지 드라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인 작가에게 자유롭게 집필할 공간과 원작을 발전시킬 수 있는 교육까지 제공한다. CJ E&M은 지난 4월 국내 처음으로 신인 작가들의 집필 공간인 ‘오펜 센터’를 서울 상암동에 열었다. 2020년까지 130억원을 투자해 이들을 지원한다. 이윤정, 김상호 등 유명 PD들은 멘토 역할을 하며 이들의 데뷔를 돕고 있다. 마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육성 센터처럼 말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광고주들도 투자를 망설이지 않는다. 편성만 되면 그 가능성에 베팅하는 광고가 밀려든다.

이에 더해 벤처 생태계에선 쉽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패자부활전도 이뤄진다. 온라인·모바일 공간의 웹드라마 등을 통해서다. 지상파 등 주요 방송사와 제작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실패하면 온라인·모바일 공간에 와서 마음껏 도전하면 된다. 이곳에서 승자가 되면 방송사와 제작사는 다시 ‘콜’을 보낸다.

르네상스 시대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도 당시 경쟁자였던 로렌초 기베르티에게 밀린 패배자였다. 하지만 경쟁에서 밀려난 뒤 로마 건축법을 꾸준히 익힌 브루넬레스키에게 후원자인 메디치가는 물론 시민들도 다시 한번 기회를 줬다. 그렇게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위대한 돔이 탄생했다.

기성 작가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신인 작가들에게 기회가 가고 있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감한 후원뿐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다시 기회를 주고자 하는 관용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또 다른 드라마 르네상스와 한류 붐이 여기서 비롯될지 모를 일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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