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혼슈의 북단, 이와테현의 도시 모리오카(盛岡). 이 도시 외곽의 한 식당. 나는 당시 ‘일본 방문의 해’를 맞아 이 지역을 취재하던 중이었다. 안내자가 말하기를 “이곳에 한국식 냉면이 있습니다. 그곳을 취재합니다”라고 했다. 한국 냉면이? 동포가 많은 오사카와 도쿄도 아니고 멀고 먼 모리오카에? 변용웅 씨가 운영하는 ‘뿅뿅사’라는 냉면집에 들어섰다. 거기서 처음으로 이른바 ‘모리오카 냉면’을 먹었다. 특이했다. 쫄깃한 밀가루와 전분면, 묵직하고 진한 육수, 깍두기를 올린 고명까지. 우리가 아는 평양냉면과는 달랐지만 냉면의 존재 자체로 흥미로웠다. 도대체 왜 이 도시에 냉면집이 있을까. 그것도 우리 혈통의 냉면집만 추려도 스무 곳이 넘고, 냉면을 다루는 집을 모두 합치면 400여 곳이 넘는 거대한 냉면 도시가 됐을까. 그 궁금증은 결국 11년 만에 다시 일본행 비행기를 타게 했다.
[여행의 향기] 일본에 뿌리내린 함흥식 냉면…면발은 쫄깃, 육수는 묵직했다
일본에서 냉면 유행시킨 모리오카 냉면집

모리오카는 인구 13만의 작은 도시다. 조용하고 아담하다. 우리와 인연도 깊다. 45년 해방 당시 모리오카가 소속된 이와테현에 살던 조선인이 1만 명이 넘었다. 철광석과 유황광산에 징용온 사람들이었다. 이때 한 조선인이 도쿄로부터 이곳에 온다. 1954년의 일이다. 함흥 출신의 양용철 씨(20년 전 타계)였다. 그는 일본인 아내와 함께 이 도시로 이주했다. 한 지인이 ‘모리오카라는 도시에 오면 먹고 살길이 있다’는 조언을 해줬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90년 전에 일본으로 건너왔어요. 17세 때였죠. 부산~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연락선을 탔습니다. 도쿄로 가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거기서 어머니를 만났고, 나중에 모리오카로 오게 됐습니다.”

양용철 씨(일본명 아오키 데루토)의 차남 아오키 마사히코 씨(62)의 증언이다. 그는 현재 부친이 세운 그 냉면집 ‘식도원’(쇼쿠도엔) 경영을 맡고 있다.

“처음부터 냉면이 잘 팔린 건 아니었어요. 냉면 맛을 일본인 손님들이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로 라멘과 불고기를 팔았습니다.”
 식도원의 모리오카식 냉면. 육수가 깊고 그윽하며 간장의 맛도 살짝 난다.
식도원의 모리오카식 냉면. 육수가 깊고 그윽하며 간장의 맛도 살짝 난다.
패전 후 오랫동안 침체기를 걷던 일본도 점차 활력을 얻기 시작했고 외식하는 인구가 크게 늘었다. 소화 30년(1955년) 이후의 분위기였다. 1960년대로 접어들자 경제성장이 크게 일어났고 외식이 하나의 흐름이 됐다. 이때 식도원 손님이 크게 늘었고, 냉면도 바뀌기 시작했다. 메밀 면 대신 전분과 밀가루로 뽑고, 육수도 단맛이 돌고 묵직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이 새로운 맛의 냉면에 모리오카 시민들이 반응했다. 불고기를 먹고 냉면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이 유행했다. 나중에는 그저 냉면 한 그릇만 먹으러 오는 손님도 생겼다. 오사카와 도쿄에도 냉면을 파는 우리 동포 식당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불고기의 입가심으로 먹는다. 냉면이 독자적으로 유행한 건 그래서 모리오카가 시조가 된다.

아오키 마사히코 씨가 부엌에 필자를 불러 냉면 뽑는 과정을 보여준다. 단단하게 반죽한 면을 압출식 냉면분틀에 넣어 뽑는다. 시원하게 만든 육수를 붓고 달걀과 소고기 편육 등을 얹는다. 한국 냉면과 똑같은 과정이다. 이런 냉면 분틀은 일본인은 쓰지 않는다. 오직 냉면집을 위해 주문 제작된다.

모리오카 냉면을 먹어본 한국인의 평가는 엇갈린다. 특이하고 맛있다는 평도 있고, 평양냉면과 달라 어색하다는 말도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당시 양용철 씨가 이 냉면을 만들 때 도쿄와 오사카에서는 이미 평양냉면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썼는데, 정작 양용철 씨는 함흥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쫄깃한 전분 면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메밀은 소바라는 일본 면이 있어서 오히려 일본손님이 어색해했다. 이때 쫄깃한 면과 특이한 육수는 이국적인 면 요리의 개성을 잘 보여줬다.

고기와 육향이 강한 쫄깃한 맛이 일품

필자는 11년 전 취재 영감을 불러일으킨 변용웅 씨를 다시 만나러 가야 했다. 그는 여전히 건재했고, 칠순에 접어든 나이에도 예전보다 더 젊어보여 깜짝 놀랐다. 그가 정력적으로 모리오카 냉면을 보급하고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은 그간 간간이 들려왔다. 도쿄의 긴자에도 초청돼 분점을 열었을 정도다. 그의 냉면집 뿅뿅사는 여전했다. 시 외곽에 아름다운 디자인의 가게 건물이 눈에 띄었다.

식도원이 모리오카 냉면을 창조했다면 그것을 모리오카 밖으로 폭발력 있게 점화한 집은 뿅뿅사라고 알려져 있다. 변씨가 요리업에 뛰어든 건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원래 폐품재생업을 하던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졌고, 그가 가업을 이어야 했다. 그러다가 지금의 뿅뿅사를 연다. 아버지가 하던 사업장 자리를 그대로 이용해 35년 전 개업했다. 식도원이 전통의 맛이라면 뿅뿅사는 ‘영업의 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프(육수)와 면, 고명의 여러 배합과 과일을 얹는 방식 등이 모리오카 냉면의 형식을 구축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수프가 중요합니다. 좋은 재료를 써야 하지요. 스네라고 부르는 소 정강이살, 소뼈로 곤 육수가 맛이 깊어야 합니다.”

모리오카 냉면은 하나의 일관된 맛과 모양이 있다. 식도원-명월관-뿅뿅사-삼천리-성루각 등 모리오카 내 주요 냉면집을 모두 방문해 시식하면서 알게 됐다. 우선 앞서 말한 대로 전분과 밀가루가 배합된 중면 정도의 굵기의 면이다. 쫄깃함은 가게마다 다른데 씹히는 맛이 좋고, 구수한 뒷맛이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변용웅 씨는 2분30초 정도 면을 삶는다고 밝혔는데, 한국의 평양냉면보다 오래 삶는다. 한국의 냉면은 굵기가 대체로 가늘어서 삶는 시간이 더 짧다. 면은 우리에게 어색하지 않다. 쫄면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쫄면이 소다의 배합으로 얻은 쫄깃함이라면 모리오카 냉면은 전분의 배합, 즉 함경도 냉면의 성격이 유전된 것이므로 성격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모리오카 냉면은 특히 육수에 방점이 찍힌다. 우리 평양냉면이 밍밍하고 가벼운 맛이 핵심인데 비해 모리오카는 묵직하고 통쾌하다. 사골을 반드시 섞고, 고기의 육향이 강한 스타일이다. 처음에는 어색하다가도 자꾸 마시면 입맛을 끌어당기게 된다. 과일과 깍두기를 얹어 매운맛을 내는 것도 서울식과 대별된다. 모리오카 냉면의 핵심 가게 중 하나인 명월관의 대표 최성수 씨(56)도 그렇게 말한다.

“평양은 육수보다 메밀 국수의 맛이 핵심이라면 함흥은 면이 중요합니다. 모리오카 냉면은 함흥냉면에서 시작한 것이지요.”

그는 1943년 산판의 노동자로 홋카이도에 온 부친(고 최순재·1922년생)의 후예다.

“부친이 1950년대 중반에 모리오카로 이주했습니다. 나중에 불고기집을 열고 냉면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부터 맵고 빨간 냉면으로 이름을 냈지요.” 명월관은 야키니쿠, 즉 불고기가 맛있는 집으로도 유명한데 냉면의 매운맛이 강해 유혹적인 힘이 느껴진다.

일본 붉은 된장 ‘아카미소’로 만든 자자멘
 완코소바는 작은 그릇에 한입 분량의 소바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완코소바는 작은 그릇에 한입 분량의 소바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모리오카는 ‘3대면’으로 유명하다. 전국적인 지명도가 있을 정도다. 냉면 외에 완코소바와 자자멘이다. 완코소바란 작은 그릇에 한입 분량의 소바(메밀면)를 연속적으로 담아내는 방식이다. ‘많이많이 드시라’는 모리오카식 손님 응대가 하나의 요리 방식으로 굳어진 사례다. 원래 이곳의 연회에서 먹던 방식인데 상업화된 것은 1950년대다. 현재 세 곳의 소바집에서 이 국수를 낸다. 그중 하나인 아즈마야(東家)는 인기점으로 외국인도 많이 들른다. 완코란 작은 그릇을 말하는데, 10그릇이 일반 국수 한 그릇 분량이다. 완코소바의 결정적인 특징은 원한다면 얼마든지 면을 계속 낸다는 점이다. ‘하이 동동, 하이 장장’ 하며 추임새를 넣는다. “어서 많이 드세요”라는 권유다. 순박하고 넉넉한 모리오카의 인심을 보여준다고 한다. 모리오카 출신의 한 여성 푸드파이터가 앉은자리에서 570그릇을 먹었다고 한다. 일반 국수 양으로 57그릇 분량이다.

“그리고는 디저트 삼아서 돈가스 정식을 먹더라고요.”(웃음)

아즈마야의 전무 다카하시 씨의 설명이다. 아즈마야는 메이지 40년(1907년)에 문을 연 역사적인 소바집이기도 하다.

모리오카 3대면의 한 자리는 자자멘이다. 맞다. 짜장면의 일본식 발음이다. 원조집인 빠이롱(白龍)을 찾았다. 원래 중국 베이징과 산둥 쪽에서 먹던 짜장면이 어떻게 일본에 전해졌을까. 한국과는 무슨 관계일까. 창업자인 다카시나 간죠 씨가 만주지방에서 전기기사로 일하다가 귀국, 포장마차로 차린 것이 바로 이 짜장면의 시초라고 한다. 소화 28년(1953년)의 일이다. 현재는 딸에게 전수돼 맥을 잇고 있다. 한국 짜장면이 화교에 의해 만들어진 것과 달리 중국에서 귀국한 일본인의 손으로 퍼졌다. 현재 40여 개 가게가 자자멘을 팔고 있다. 중국 춘장(첨장)이 없었으므로 일본의 아카미소(붉은 된장, 한국 된장과 비슷한 짙은 갈색)로 소스를 만들었고 현재로 이어진다. 돼지고기를 쓰는 것은 같지만 양파는 쓰지 않으며 짜고 진한 소스 맛이 중국의 오리지널과 흡사하다. 식초를 곁들여 비비기도 하며, 생강 다진 것을 함께 내주는 게 특이하다. 다 먹고나면 날계란을 풀고 육수를 풀어 계란탕(지단탕)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다. 원래 본토에는 없는 스타일이다.
 박찬일 셰프가 한국 집에서 만든 자자멘.
박찬일 셰프가 한국 집에서 만든 자자멘.
박찬일 셰프의 자자멘 만드는 법

귀국한 뒤 모리오카의 면을 재현해보고 싶었다. 냉면과 소바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자자멘에 도전했다. 그릇은 빠이롱의 오리지널 면기다. 1500엔에 그릇만 판다. 먼저 시판용 칼국수를 준비한다. 한국된장 한 큰술, 삼겹살 다진 것 120그램, 마늘 1톨, 양파 다짐 1큰술, 생강 약간, 식초 1큰술, 조리용 술 2큰술, 식용유 2큰술, 오이와 대파 약간을 준비했다.

1.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양파와 마늘을 볶는다. 삼겹살 다짐육을 넣어 갈색으로 볶는다. 술을 넣고 불을 낮추고 된장을 넣어 천천히 5분간 더 볶는다.
2. 냄비에 물을 넉넉히 잡아 면을 삶는다. 면 삶는 물을 한 국자 떠서 1의 팬에 넣는다.
3.면을 찬물에 재빨리 헹구고 그릇에 담은 뒤 1의 짜장소스를 올린다. 생강과 식초를 기호에 따라 얹고, 대파와 오이를 올려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