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의 눈으로 본 세계

리콴유 지음 / 유민봉 옮김 / 박영사 / 335쪽 / 2만원
[책마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미국 쇠퇴론은 틀렸다"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리콴유(李光耀·1923~2015)는 말레이반도 끝자락의 작은 나라를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로 키운 인물이다. 1959년부터 1990년까지 31년간 총리로서 국가를 이끌었고, 퇴임 후에도 2011년까지 선임 장관과 고문 장관을 맡아 국정에 참여했다. 그는 국제 무대에서도 중국의 마오쩌둥부터 시진핑까지, 미국의 린드 존슨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세계 각국 지도자들과 교류하며 세계적인 정치인으로 널리 존경받았다.

《리콴유의 눈으로 본 세계(원제: One man’s view of the world)》는 중국과 미국을 비롯해 싱가포르가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해야 할 국가들의 주요 이슈와 앞으로 이들 국가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리콴유의 견해를 담은 책이다. 그는 89세인 2013년 이 책을 집필하고 출간했다. 2015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국제 정세에 대한 나의 이해는 지난 50년간 공직생활에서 만난 많은 외국 인사들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한 것”이라고 밝혔듯이 이 책은 학술서가 아니다. 냉철한 현실감각과 능수능란한 정치술을 지닌 리콴유가 오랜 기간 각국 지도자들과 국민을 관찰하며 얻어진 식견과 통찰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의 정치·경제 현상을 날카롭고 명쾌하게 파헤치며 미래를 예측한다.

저자가 상당한 비중을 할애해 심도 있게 분석하는 주제는 향후 미·중의 패권 경쟁과 아시아 지역의 역학 구도 변화다. 그는 “태평양 서부 해역에서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21세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대칭적 양자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은 점점 강대해지는 힘을 바탕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 우위에 강하게 도전할 것이다. 먼저 미 해군을 중국의 12마일 영해 밖으로 밀어낸 뒤, 200마일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에서 미군의 정찰 비행을 불허할 것이다. 미국은 향후 20~30년 안에 이 수준까지는 양보할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200마일 EEZ 밖으로 밀어낼 때가 아·태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국가가 되는 시점이다.

그런 때가 오면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저자는 “미국의 생각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중국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면서도 “그렇다고 한쪽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미국이 아·태 지역에서 힘의 균형을 맞추지 못할 만큼 쇠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저자의 예측으로는 중국은 미국을 서태평양에서 완전히 밀어낼 수 없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 호주, 괌에 군대를 여전히 주둔시키며 힘의 균형을 맞출 것이다.

리콴유는 중국의 부상과 맞물려 등장한 ‘미국 쇠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힘은 역동성에서 나온다. 미국의 성공은 효율성을 넘어 세상을 놀라게 하는 끊임없는 혁신으로 뒷받침되는 역동적인 경제에 기인한다.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비범한 능력에서 중국은 미국을 따라잡지 못한다. 혁신의 점화력이 부족해서다. 저자는 “미국이 장기적으로 서태평양의 병력 규모나 국내총생산(GDP)에서 중국에 밀릴 수는 있어도 핵심 우위인 역동성은 잃지 않을 것”이라며 “실제로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하더라도 미국 같은 대국이 쇠퇴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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