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대운하 카날 그란데는 수상교통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대운하 카날 그란데는 수상교통의 중심 역할을 했다.
미로 같은 복잡한 길, 비밀스러운 곳으로 향하는 듯한 수로, 좁은 수로를 스르륵 물뱀처럼 미끄러져가는 곤돌라, 그 속살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묘한 느낌의 도시, 찬란한 역사 너머에 강한 생명력으로 빛나는 곳, 그곳이 바로 이탈리아 베네치아다.
종루에서 바라본 베네치아 전경
종루에서 바라본 베네치아 전경
리알토 다리에서 대운하를 보다
베네치아에서 최초로 지어진 대리석 다리인 ‘리알토 다리’
베네치아에서 최초로 지어진 대리석 다리인 ‘리알토 다리’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주에 있는 베네치아는 ‘바다의 호수’인 석호(lagoon) 위에 세워진 물의 도시다. 내륙과 철도로 이어진 산타루치아역을 나서자마자 운하가 보인다. 이 운하를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다리인 리알토다. 다리 위에 올라 갯내음 실린 바닷바람을 느껴본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또 어떠한가? 햇살을 등지면 실루엣만 보이는 곤돌라의 움직임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시선을 더 멀리 던지면 베네치아의 중심을 흐르고 있는 카날 그란데(canal grande·대운하)가 아득하게 다가온다. 길이 3.8㎞의 대운하는 베네치아의 중심을 역S자 모양으로 흐르고 있다. 그 모양이 마치 나라 곳곳을 두루 끌어안으려는 자비로운 왕의 행렬 같다. 왕의 행렬 주변으로 백성들이 몰려들 듯 대운하 주변에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수많은 수로로 연결된 작은 골목 골목에서는 빨래가 마르고 고양이가 낮잠을 자는 소소한 삶이 넘실대고 있다.

곤돌라를 따라 펼쳐지는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등대 역할을 하는 ‘대종루’
산마르코 광장의 등대 역할을 하는 ‘대종루’
베네치아에는 바퀴 달린 교통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수상택시, 바포레토, 트라게토, 곤돌라 등의 교통 수단을 이용한다. 그중에서 구시가지의 소박한 가옥을 둘러보기에는 곤돌라가 최적의 수단이다. 요금은 배 한 척에 80~90유로 정도다. 코스와 시간대에 따라 약간의 가격 차이가 있다. 리알토 다리 앞의 선착장에서 곤돌라를 탔다. 곤돌라는 끊어질 듯 이어져 있는 복잡한 수로를 유유히 이동했다. 얼핏 보기에 곤돌라를 운전하는 곤돌리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것 같지만 관련 학교를 수료하고 4개 국어는 할 줄 알아야 하는 전문직업이다. 게다가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베네치아에 주소를 둔 사람만 할 수 있다고 하니 면허 따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곤돌리에는 익숙한 움직임으로 3m나 되는 긴 노를 저어 베네치아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골목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충돌의 위험이 있는 사각지대에서는 “오이~”라는 소리를 내어 위치를 알리곤 했다. 그때의 소리는 빈 공간에 부딪혀 긴 울림을 주었다. 대처로 나간 젊은이들이 비워둔 공간은 그렇게 울림으로 증명된다. 자동차들이 내는 소음이 없는 곳, 고요함을 딛고 퍼져나가는 물결소리, 젖은 나무와 이끼의 냄새. 전설 속 수중도시가 이 세상에 잠시 떠오른 듯한 공간이다. 그러나 조금만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오랜 시간이 켜켜이 쌓인 건물 안에는 현대의 문명이 몸을 맞춰 들어가 있다. 명품숍과 일반 잡화점, 레스토랑과 카페, 호텔 등이 즐비해 활발한 도시의 자태를 드러낸다.

곤돌라는 다시 대운하 방향으로 기수를 돌렸다. 1층이 비워진 건물들이 보인다. 자세히 보면 해수면이 이미 1층의 높이를 침범해있다. 한때 저곳에 누군가 살고 있던 날을 상상해본다. 문을 열면 바로 아래에 아드리아해의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모습이 여행자에게는 꽤나 낭만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아까운 낭만이 빈집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지구 온난화에 의한 해수면 상승과 약해진 지반의 침하로 인해 조금씩 바다로 가라앉고 있다. 게다가 ‘아쿠아 알타(해일로 인해 운하가 범람하는 현상)’로 인해 도시가 물에 잠기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그래서 이곳 건물들 1층은 대부분 비어 있고, 주요 시설은 3층에 있다. 이 가슴 아픈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계획이 모세 프로젝트다. 바다 밑에 방벽을 설치해뒀다가 침수 위기 때 압축공기를 주입해 부력으로 일으켜 세우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역시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며, 생태계에 미칠 영향으로 인해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지금 이 도시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이 땅을 처음 일궜던 베네치아 선조들의 절실함인지도 모른다.

이탈리아 난민이 일군 ‘인내의 땅’

베네치아 골목은 아주 좁다. 심지어 한 사람이 양팔을 벌렸을 때보다 더 좁은 길도 있다. 그러니 자동차와 같은 교통수단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작은 길이 국수다발처럼 흩어져 베네치아를 이루고 있고, 수없이 많이 놓여 있는 수로로도 모자라 또 어떤 길의 끝에는 대운하가 갑자기 나타나는 등 막다른 길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야말로 미로 자체다. 베네치아는 쫓기고 쫓겨 더 이상 도망갈 곳 없는 난민이 숨어들어간 곳이다. 5세기 로마제국 말기에 이민족의 침입을 받은 이탈리아 북부 난민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자 베네치아 갯벌로 피신을 한다. 진흙 위에 집을 지을 수 없으니 지면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그곳에 수많은 나무 기둥을 박아 흙으로 메꾼다. 그것은 하나의 섬이 된다. 그렇게 또 다른 섬을 만들어내고, 섬과 섬 사이에는 다리를 놔 연결한다. 그리하여 118개의 섬으로 이뤄진 베네치아에는 177개의 조그만 수로에 400여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태생 자체가 적의 말과 전차가 들어올 수 없는 구조를 띠는 것이다. 베네치아는 사랑과 낭만의 땅이기 이전에 생존에 대한 열망으로 이뤄진 ‘인내의 땅’이다.

5세기 힘없는 농민과 어부들이 이민족으로부터 도피해 임시 거주하던 척박한 땅, 베네치아는 10세기에는 동부지중해 지역과의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게 된다. 13세기에는 십자군과 동맹을 맺어 동방무역을 확대하고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는 등 필적할 수 없는 세력을 지니게 된다. 이는 14~15세기 초 해상무역공화국으로서 최고의 전성기로 이어진다. 이곳의 건축물에는 베네치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성기를 거치며 여러 양식의 건축물이 존재하는 베네치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특별한 건축 박물관이다. 도시 전체가 특별한 건축 걸작으로 꼽히는 이곳은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산마르코 광장의 다양한 풍경
마르코 성인의 납골당인 ‘산마르코 성당’
마르코 성인의 납골당인 ‘산마르코 성당’
대운하 출구 쪽에는 기슭에 산마르코 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이곳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격찬했다. 광장 주변으로 시계탑과 종루, 산마르코 성당과 두칼레 궁전이 둘러싸고 있다. 산마르코 광장에 있는 96.8m의 종루에 오르면 이 도시의 공간 구성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평화로운 마을의 풍경과 탁 트인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 산 마르코 광장의 웅장함에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 시원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오는 전망대를 한 바퀴 쭉 돌고 있으니, 때마침 광장의 시계탑에서 오후 4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500년 전에도 울려 퍼졌을 과거의 소리가 베네치아 시가지에 청량하게 울려 퍼졌다.

베네치안 고딕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의의가 깊은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총독 관저였으나 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파사드의 격자 장식창과 규칙적으로 뻗어 있는 기둥이 멋진 이 건물은 하얀 외관으로 우아함을 더하고 있다. 9세기에 지어졌으나 이후 여러 차례 개축돼 15세기에 완성됐다. 베네치아의 권력과 영광의 상징이므로 천천히 시간을 내어 궁전 전시장을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잇는 다리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탄식의 다리다. 두칼레 재판소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죄수는 이 다리를 건너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다시는 햇빛을 볼 수 없다는 절망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폴레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극찬한 ‘산마르코 광장’
나폴레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극찬한 ‘산마르코 광장’
산마르코 광장에는 잘 알려진 성당이 있다. 산마르코 성당은 12사도 중 한 명인 성 마르코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세워진 성당이다. 마침 저녁 햇살을 받아 금으로 장식된 모자이크가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마을에 축복이라도 내려주는 듯하다. 동서양의 건축 문화가 조화를 이뤄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절묘하게 혼합된 건축물로 중세건축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9세기에 세워져 11세기 말에 재건됐고, 성당 내부는 동방을 침략할 때마다 가져온 전리품으로 꾸며졌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벗어나 대운하의 하구 끝에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 보인다. 커다랗고 둥근 돔이 운하의 풍경 전체를 평화롭게 끌어안는 듯하다. 이 성당은 17세기 베네치아를 강타한 흑사병이 소멸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헌됐다고 한다.

물과 빛으로 빚어낸 도시, 베네치아
두칼레 궁전과 프리지오니 누오베 감옥을 연결하는 ‘탄식의 다리’
두칼레 궁전과 프리지오니 누오베 감옥을 연결하는 ‘탄식의 다리’
베네치아는 도시 전체가 탁월한 개성을 지닌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도시의 절대적인 매력은 이곳이 물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육지 개념이 아니기에 모든 것이 물 위의 삶으로 치환된다. 소방배, 경찰배, 화물선, 보급선, 수상택시, 바포레토 등의 교통수단이 작은 예다. 중력이 아니라 부력의 법칙으로 돌아가는 외딴 행성에 온 듯도 하다. 힘없는 피난민이 살아남기 위해 자연에 맞서 건설한 땅, 베네치아는 그 자체만으로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깃든 곳이다. 리알토 다리에 올라 바라보는 베네치아 야경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어둠이 찾아오고 빛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수많은 이야기가 걸어 나와 운하 주변으로 몰려드는 듯하다. 살짝 귀 기울이면 들리는 소리. ‘그대, 계속해서 오라!’ 물 위에 세워진 신비로운 도시, 베네치아가 당신에게 건네는 인사다(베네치아는 라틴어로 ‘계속해서 오라’는 의미다).

여행 팁

[여행의 향기]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박물관, 베네치아
항공편
아시아나항공이 인천~베네치아 구간에 전세기를 6월부터 10월까지 주 2회 운항하고 있다.

교통수단
여행시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다. 대운하 곳곳에 정차하고 풍경을 감상하기에도 좋다. 1회권은 7.5유로지만 24시간은 20유로, 48시간은 30유로이므로 1회권보다 일정에 맞게 데이 권으로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베네치아 본 섬 외에 주변 섬을 갈 때도 바포레토를 이용하면 된다.

베네치아의 축제
빛나는 예술의 도시, 베네치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들이 열린다. 이 시기에 방문한다면 더욱 화려하고 뜻깊은 여행이 될 것이다.
- 카르네발레 디 베네치아(가면축제): 사순절 10일 전부터 시작, 대부분 1~2월 개최
-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9월 초순
- 베네치아 비엔날레: 홀수 해의 6~10월
- 레가타 스토리카 카날 그랑데(곤돌라 경주): 9월 첫 번째 일요일

베네치아=김민정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 mjkim75f@flyasian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