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1945' 무대에 올리는 극작가 배삼식

국정농단·탄핵 시국에 재조명한 1945년 만주
항일 vs 부역, 용기 vs 비겁 등 양단하기 힘든 역사
"타인의 삶 이해한다"는 독단에서 벗어나야
극작가 배삼식 "옳고 그름의 심판이 정당한지 되묻는 게 예술가의 임무"

“우리 사회는 타인의 삶이나 생각에 대해 옳고 그름을 너무 손쉽게 판단하는 것 같아요. 어떤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수록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알 수 있죠. 이런 심판 자체를 다시 심판대에 올리는 일이야말로 예술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극작가 배삼식(47·사진)이 3년 만에 신작 연극 ‘1945’를 들고 돌아왔다. 배 작가는 1998년 데뷔 이래 2007년 ‘열하일기만보’로 대산문학상·동아연극상을, 2009년 ‘하얀앵두’로 동아연극상을, 2015년 ‘먼 데서 오는 여자’로 차범석희곡상을 받은 우리 시대 대표적 극작가다. ‘한국인의 정체성’ 등을 주제로 다뤄온 국립극단의 의뢰로 배 작가가 새 희곡을 썼다. ‘1945’는 연출 류주연의 손을 거쳐 오는 5일 명동예술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삶을 움직이는 건 의지와 욕망”

작품의 시공간은 1945년 해방 직후 만주다. 일제의 수탈을 피해 만주에서 살던 사람들이 해방 소식에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조선인 전재민(戰災民) 구제소’에 모인다. 피란민은 나날이 밀려들고 기차는 언제 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어떻게든 귀향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강한 의지, 비정함, 그 가운데서도 발현되는 인간애 등이 15명의 등장인물 속에 뒤엉킨다.

지배자 일본인은 이제 고개 숙이고 숨어야 할 처지의 약자다. 만주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다 탈출한 명숙은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긴 일본인 미즈코를 버리지 못해 그를 자기 동생으로 위장하고 같이 기차를 타려고 한다. 명숙에게 미즈코는 ‘원수’지만 ‘내 지옥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극중 인물들은 어찌 보면 몰인정한 선택을 한다. 조선행 기차를 기다리던 중 미즈코가 일본인이란 걸 알게 된 아낙네들은 “조선사람도 기차를 다 못 타서 아우성인데 일본사람을 태우는 게 말이 되냐”고 따진다. 같이 머물던 장씨가 장티푸스에 걸려 앓아눕자 그를 한겨울에 집 밖에 격리하기도 한다.

배 작가는 “어떤 인물도 비열하다거나 틀렸다거나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내리며 쓰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삶을 움직이는 건 옳고 그름이 아니다”며 “삶에 대한 의지를 갖고 살아남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애달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삶의 구체성 짚고 싶어”

배 작가는 지난 1월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해 3월 탈고했다. 국정농단 사건과 탄핵을 계기로 한국 사회 내 다양한 갈등이 표출되고 상대 진영을 향한 증오와 분노가 만연하던 시기다. 그가 1945년 만주에 돋보기를 가져다 댄 이유는 무엇일까.

“해방 이후는 현재를 사는 우리의 뿌리가 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대한 우리 공동체의 기억은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잘 모르니 추상적인 관념으로 상대를 규정합니다. 친일이냐 반일이냐, 독립투쟁이냐 협력부역이냐, 용기냐 비겁함이냐…. 이런 틀 안에 다 담기지 않는 구체적인 삶이 있다는 걸 짚고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행위 자체도 객관화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자기 것처럼 느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말 고독하고 절망스럽게도 타인은 결국 영원한 타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온전히 알 수 없는 대상을 ‘이해한다’는 말로 자기 안에 동일시하기보다 남을 판단하는 일의 어려움과 혼란스러움을 인식하는 게 타인을 이해하려는 더 건강한 시도일지 모릅니다.” 30일까지, 2만~5만원.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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