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한동일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라틴어문장 따라 읽다보면 지친 학생들도 위로 받겠죠"
“첫 강의는 휴강입니다. 대신 이 화창한 봄날, 나가서 네불라(nebula·아지랑이)를 유심히 살펴보세요.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텐데요. 우리 마음의 운동장에도 아지랑이가 있습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쉽게 보이지 않지만 잘 살펴보세요. 수업 끝!”

2010년 한동일 변호사(교회 대법원 로타 로마나 소속)는 서강대에서 ‘초급 라틴어’ 수업을 했다. 첫 수업의 수강생은 24명. 그의 수업은 남달랐다. 한 시간은 라틴어 문법이나 유럽 역사를 강의하고, 나머지 15분 동안은 그가 좋아하는 라틴어 구절 한 마디를 알려주고 학생들과 자유롭게 얘기했다. 제자들은 열광했다. 24명은 곧 240명으로 늘어났다. 한 학기 수업이 끝나면 제자들은 한 변호사에게 “수업을 통해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쪽지를 전달했다. 그는 2010~2016년 서강대에서 했던 강의를 묶어 《라틴어 수업》(흐름출판)이라는 책으로 엮었다.

[책마을] 한동일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라틴어문장 따라 읽다보면 지친 학생들도 위로 받겠죠"
취업난에 시달리는 학생들은 영어나 중국어에 몰두한다. 그런데도 라틴어 수업은 왜 인기가 있었을까. 그는 “힉 쿠오퀘 트란시비트(Hoc quoque transibit)!”라고 말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뜻이다.

“요즘 학생들은 목표를 위해 달리기 바쁘잖아요. 실패하면 아파하고, 분노하죠. 지금의 고통과 절망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공부도 매번 내일로 미루는데, 끝 모를 분노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내일로 잠시 미뤄둘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어느새 나를 괴롭히던 순간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게 돼요. 이런 이야기가 학생들에게 많은 위로가 된 것 같아요.” 이렇듯 그가 던지는 이야기는 어학을 기반으로 한 인생이나 철학 수업에 가깝다.

그가 수업과 책을 통해 학생들에게 궁극적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는 ‘우리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공부한다’는 뜻의 ‘논 스콜래, 세드 비태 디쉬무스(non scholae, sed vitae discimus)’라는 라틴어 문장을 꺼냈다. 그는 “공부라는 건 어떤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고, 해답을 알아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스스로를 ‘공부하는 노동자’라고 불러요. 지식을 욱여넣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얘기죠. 실패하는 나를 보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성찰을 통해 조금 더 나아진 상황을 바라보는 힘을 기르는 거죠. 그런 것들을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312쪽, 1만5000원)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