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넷플릭스 제공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넷플릭스 제공
1960년 9월26일,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선후보 TV 토론회가 열렸다. 결전의 날을 앞두고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은 호텔로 향했다. 리허설도 않고 틀어박혀 토론 자료를 밤새 읽었다. 경험이 그를 호텔방으로 이끌었다. 원고를 철저히 살피고 라디오 토론에 나가면 항상 좋은 평가를 받은 기억 때문이었다.

그 시간, 신인에 가까웠던 민주당 후보 존 F 케네디는 호텔 방을 나왔다. 옥상으로 향했다. 햇볕에 얼굴을 내놓고 구릿빛 피부를 만드는 데 시간을 쏟았다. 참모들은 그의 옆에서 자연스런 표정 등에 대해 조언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TV 토론이 끝나자 판세가 뒤집어졌다. 라디오로 이를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닉슨이 이겼다고 평가했지만 TV로 본 사람들은 케네디에 열광했다. 그의 건강하고 여유로운 이미지는 흑백TV에서조차 빛을 발했다. 그렇게 케네디는 제35대 미국 대통령이 됐다.

콘텐츠 헤게모니(hegemony·패권)는 플랫폼 전쟁의 승자가 쥐게 된다는 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뉴미디어를 바라보는 태도가 닉슨과 케네디의 운명을 갈랐다. 케네디는 불확실성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감각적이고 도전적으로 새 TV 시대를 맞았다. 닉슨은 경험의 울타리에 갇혀 새로운 물결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플랫폼은 때론 콘텐츠를 본래 가치보다 훨씬 더 빛나게 한다. 최근 문화계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봉준호 영화감독과 가수 지드래곤을 보며 케네디를 떠올린 이유다.

봉 감독 영화 ‘옥자’는 미국 넷플릭스로부터 600억원을 투자받아 제작됐다. CJ CGV 등 국내 주요 멀티플렉스는 극장과 넷플릭스 온라인 동시 상영을 반대하며 스크린에 올리는 것을 거부했다. 봉 감독은 지난 14일 간담회에서 “이번 논란은 다 나의 영화적 욕심 때문에 생겼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독 개인의 ‘영화적 욕심’만으로 볼 수 없다. 그는 상영 불가가 확정되기 한 달 전 이런 얘기를 했다. “1960년대 프랑스 영화를 봤는데 ‘영화는 끝났어. TV가 나왔잖아’라는 대사가 나오더라.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지 않나.” 그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스크린의 시대는 가고 스트리밍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지드래곤의 USB 앨범에서도 비슷한 냄새가 난다. USB 자체 문제도 있지만, 음원을 다운받는 게 아니라 링크를 USB에 담아둔 것도 파격이었다.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는 “음반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논리대로라면 차트 집계 때 다운로드 수만 적용하고 스트리밍은 제외해야 한다.

콘텐츠업계에선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방향성이 명확하지는 않다. 기득권은 새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을 막고 있다. 소비자들은 다르다. 주요 멀티플렉스에선 볼 수 없는 ‘옥자’이지만 박스오피스 2위에 떡하니 자리잡았다. 지드래곤의 음원은 공개되자마자 차트 앞쪽으로 치고 나갔다.

이번 사건들이 던진 의문과 마주하며 ‘카라얀’이란 이름도 떠올렸다. 베를린필하모닉 지휘자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세상을 떠난 지 28년이 지났어도 그가 녹음한 클래식 음반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 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녹음한 1000여 장의 LP, CD의 힘이 크다. 1940년대 LP가 나오자 많은 음악가들은 “레코딩은 죽은 음악”이라며 공연장 연주만 고집했다. 반면 카라얀은 집에서 음악을 즐기는 시대가 온 것을 직감하고 LP 녹음에 매달렸다.

문영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디퍼런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차별화는 전술도, 혁신적인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다.” 10여 년 뒤 우리는 어쩌면 봉 감독의 ‘옥자’와 지드래곤의 USB 앨범을 케네디의 TV, 카라얀의 앨범과 함께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