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조영수 경기대 독문과 명예교수 "빨강만 해도 의미 제각각…색은 만국 공통어 아니에요"
“모두가 같은 빨간색을 보고 있는 것 같나요? 색은 만국 공통어가 아닙니다. 같은 색을 보더라도 사람은 국가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입니다.”

조영수 경기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사진)는 국내 몇 안되는 색채 감각을 연구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색채 감각과 언어표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간의 연구를 묶어 낸 책 색채의 연상(시루)에서 그가 줄곧 주장하는 얘기는 “같은 색이라도 국적이나 문화적 배경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조 명예교수는 “1970년대 초 미국 대학원의 한 수업에서 동료 학생들과 ‘회색’에 대한 의미를 얘기할 때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이 떠올라 ‘애매한’ ‘회색분자’ 같은 뜻이 연상된다고 답했지만 다른 미국인 대학원생들은 ‘세련된’ ‘도회적인’ 같은 이미지가 연상된다고 답했다”며 “외국문학을 이해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때 느꼈다”고 설명했다.

[책마을] 조영수 경기대 독문과 명예교수 "빨강만 해도 의미 제각각…색은 만국 공통어 아니에요"
조 교수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미국인, 독일인, 한국인이 느끼는 색채 감각을 밝히는 연구에 나섰다. 그가 한국인 10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9명이 ‘빨강은 열정이 연상된다’고 답했다. 2002년 월드컵에서 활약한 붉은악마 응원단 등의 영향이다. 조 교수는 “반면 같은 조사에서 미국인은 ‘분노(27명)’, 독일인은 ‘위험(45명)’이 연상된다고 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은 붉은악마 응원단을 바라볼 때 정열, 통일, 젊음 같은 인상을 떠올리지만 미국인은 붉은악마를 무섭게, 독일인은 위험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가에 따라 색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에 대해 조 교수는 “색을 해석할 때 국가의 역사·문화와 개인적 경험이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인은 갈색을 제일 싫어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는데 나치 군복의 색이 갈색이었기 때문이라는 추정이 있다”며 “특정 국가 사람이 색을 보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색을 인용한 각 나라 숙어의 뜻은 천지차이다. 조 교수는 “미국인은 ‘우울하다(feel blue)’는 관용어에 파란색을 쓰지만 한국인은 이해하지 못하고, ‘화난다(see red)’는 뜻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244쪽, 1만7000원)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