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의 한 장면.
청소년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의 한 장면.
2010년 하반기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크게 흥행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데 서툰 사람들이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해 주는 업체를 소재로 한 영화다. 이 영화의 모티브는 19세기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이하 ‘시라노’). 이 희곡이 청소년을 위한 가슴 뛰는 사랑 이야기로 각색돼 무대에 올랐다. 국립극단이 지난 4일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막을 올린 청소년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이하 ‘록산느’)다.

원작 ‘시라노’는 기형적으로 큰 코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사랑하는 여성 록산느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시라노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시라노 친구 크리스티앙도 역시 록산느를 사랑한다. 하지만 언변이 좋지 않아 고민한다. 시라노는 그런 친구를 위해 록산느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필하며 자신의 사랑을 눌러 담는다. 반면 거침없는 성격의 권력자 드 기슈 백작은 록산느에게 노골적으로 구애한다.

‘록산느’는 주객(主客)을 뒤집었다. 시라노 등 세 남성이 아니라 록산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록산느는 사랑하는 일과 사랑받는 일에 모두 주저함이 없는 발랄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그는 무엇이 진정한 사랑일까를 고민하며 자신이 원하는 ‘진짜 사랑’을 찾고자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주인공들을 통해 외모, 사회적 조건, 진정성 등 사랑이라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개념이 살아 움직인다.

올해로 창립 6주년을 맞은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가 제작했다. ‘청소년의,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을 위한 연극’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청소년 17명이 제작 과정에 참여해 연습 장면, 리허설 등을 보고 제작진과 의견을 나눴다. 연구소는 성인에게는 익숙하지만 청소년에게는 낯선 대사나 장면들을 수정했다. 김성제 소장은 “청소년의 삶과 맞닿아 있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청소년극”이라며 “청소년을 교육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주체적인 인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고, 청소년극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충식 연출가는 “청소년이라고 사랑을 모르지 않는다”며 “이 공연을 통해 ‘사랑이 대체 뭐지’라는 고민을 더 깊이 하거나 일말의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울러 “청소년 관객뿐만 아니라 한때 사랑을 했거나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며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사랑의 모습에 스스로를 비춰보며 진정한 자신을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초연 이후 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다. 초연 때 출연한 하윤경 안창환 안병찬 김지훈과 새로 합류한 정현철이 호흡을 맞춘다. 초연보다 극장 규모가 커지고 영상이 추가돼 볼거리가 늘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타악 연주자들이 무대 한쪽에서 라이브 연주를 해 극을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오는 21일까지, 12세 이상 볼 수 있다. 전석 3만원.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