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텔로 폰테루톨리의 와인들.
카스텔로 폰테루톨리의 와인들.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나면 몸무게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들 말한다. 각종 파스타, 치즈, 스테이크를 맛보다 보면 어느새 체중이 불어난다는 얘기다. 중부 토스카나 지방은 특히 육식주의자의 천국이다. 소, 돼지, 멧돼지, 양, 오리, 비둘기 등의 진기한 육류가 넘쳐난다. 중심도시 피렌체에 도착하면 스테이크 전문식당이 기다린다. 커다란 고기를 보여주며 “이곳에 온 걸 환영합니다. 부디 채식주의자가 아니길 빌어요!”라고 말하는 곳도 있다.

그밖에도 토스카나 곳곳의 식당에서 뼈를 우려 육수를 내고, 살을 골라 스테이크를 굽고, 창자로 소시지를 만든다. “우리는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다 먹는다”고 어느 정육식당 주인은 말했다.

만약 와인이 없었다면 그 많은 고기를 무엇과 먹었을까 싶다. 토스카나의 주요 품종인 산지오베제가 적절한 산미도 부여하고, 쌉쌀한 타닌도 선사한다. 덕분에 고기가 잘 넘어가고 소화도 잘된다. 대표적인 와인 타입으로는 ‘키안티 클라시코’와 ‘슈퍼 투스칸’이 있다. 전자는 전통적으로 유명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급 와인이고, 후자는 기존의 틀을 깨고 국제 품종을 사용한 혁신적인 와인이다.

전통과 혁신의 명성을 모두 거머쥔 와이너리 카스텔로 폰테루톨리(Castello Fonterutoli)를 방문한 적이 있다. 지하수로 셀러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중력을 이용해 와인을 양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발 200~600m에 펼쳐진 117㎡의 밭을 120개 구획으로 세분화해 따로 수확하고 양조하는 남다른 노력도 기울인다. 덕분에 전 세계 와인 매체로부터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이탈리아의 와인&음식 매체 감베로 로소(Gambero Rosso)는 최고 등급인 3 글라스(3 Bicchieri)를 30회 이상 부여했다. 미국 와인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역시 90점 이상의 고득점을 70회나 줬다.

이 근사한 와이너리 사람들과 토스카나 전통 레스토랑에서 여러 요리에 와인을 매칭해 볼 수 있었다. 몇 가지 전채요리에 이어 닭 내장이 들어간 탈리에리니 파스타가 등장했다. 닭고기로 소스 맛을 내고 닭 내장을 볶아 올린 요리다. 소스는 진하고 육질은 쫄깃한 게 묘미였다. 탈리에리니 면은 칼국수 비슷한 모양인데 폭이 좀 더 좁아 호로록 먹기 좋다. 이 레스토랑에선 밀가루 1㎏에 30개의 달걀노른자를 넣어 면을 뽑는다. 그걸 강조하려고 메뉴 이름을 ‘30개의 노른자’란 뜻의 ‘트렌타 로시(trenta rossi)’로 붙여두기까지 했다. 그 감칠맛 나는 요리에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을 곁들였다. 이름은 ‘카스텔로 폰테루톨리 그란 셀레지오네 DOCG(Castello Fonterutoli Gran Selezione DOCG)’다.

키안티 와인의 최고 등급이며 산지오베제, 말바지아 네라, 콜로니로 품종으로 만든다. 검붉은 과일의 풍미와 기분 좋은 산미가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요리의 균형을 잡아줬다.

파스타에 이어 산비둘기 구이가 나왔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토스카나에선 별미로 즐겨 먹는다. 그릴에 살짝 구운 뒤 다시 팬에서 화이트 와인과 안초비로 맛을 냈다고 레스토랑 주인은 말했다. 맛을 보니 닭이나 오리와 비슷하면서 좀 더 부드러웠다. 이 요리에는 슈퍼 투스칸 와인 ‘시에피(Siepi)’를 곁들였다. 산지오베제와 메를로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다. 부드러운 미네랄과 은은한 스모크 향이 짭짤한 고기에 잘 어울렸다.

그날 저녁 식사는 밤 10시가 돼서야 끝났다. “손님이 남김없이 요리를 먹었을 때야말로 우리는 행복하다”고 그들은 말했다. 만약 여행의 최고 즐거움을 식도락으로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토스카나야말로 진정한 천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