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요리를 일본화한 대표적인 요리 돈가스 Getty Images Bank
서양요리를 일본화한 대표적인 요리 돈가스 Getty Images Bank
한때 한국에 ‘경양식(輕洋食)’이라는 장르의 식당이 있었다. 이는 일본의 ‘양식(洋食·요쇼쿠)’에서 온 것이다. 한국 양식의 주메뉴는 수프, 사라다, 돈가스, 비후가스, 정식 등이었다. 이는 형식은 물론 이름까지 일본화된 것이었다. 정식은 일본의 데쇼쿠(定食)에서 온 것이다. 꼭 빵이 아니어도 ‘라이스 빵’이라는 주문이 가능했다. 웨이터가 그렇게 물어봤다. “빵으로 하시겠습니까. 라이스로 하시겠습니까.” 밥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관습이 그대로 이식된 것이었다. 일본의 양식은 역사가 꽤 깊다. 메이지유신(1868년)으로 막부를 타도하고 천왕이 있는 내각 중심의 국가를 형성한 주류는 서양에서 일본의 길을 찾으려 했다. 당연히 음식문화도 포함됐다.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음식문화가 급속도로 수용됐다. 빵, 카레(영국은 인도식민지에서 받아들인), 스튜, 수프, 로스트비프 같은 것이었다. 돈가스(일본어 발음은 동까쓰)도 물론이다.
어묵은 원래 굽거나 찌는 요리지만 서양의 튀김 기술을 입혀 더 발전했다.
어묵은 원래 굽거나 찌는 요리지만 서양의 튀김 기술을 입혀 더 발전했다.
일본에서 가장 흔한 도래 음식 돈가스

도교 긴자에 가면 기무라야라는 오래된 빵집이 있다. 단팥빵 전문이다. 벚꽃이 지는 요즘은 벚꽃을 넣은 단팥빵이 잘 팔리는 시기이겠다. 원래 빵은 일본인 입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정부 세력은 국민에게 서양식 음식을 권장했다. 서양인처럼 먹어야 힘도 세지고 건강해진다고 믿었다. 빵과 고기가 핵심이었다. 고기를 별로 먹지 않던 일본인의 섭취량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일본은 지금도 양식을 하나의 일본화된 음식의 형식으로 인정한다. 우리가 보통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음식을 양식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들의 양식이란 곧 ‘일본화된 정형 양식’을 말한다. 오해가 없도록 하자.

돈가스는 일본에서 가장 흔한 도래(到來) 음식이다. 동시에 완전히 일본화됐다.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게 미리 저며 나오고 국물도 된장국이다. 500엔대의 저렴한 것부터 2000엔대(2만원)의 고급 돈가스까지 있다. 한국에서는 저급육 취급받는 등심과 안심으로 만든다. 잘 튀긴 집은 그야말로 기름 냄새도 거의 나지 않고 담백하다. 100년 노포(老鋪)가 있을 정도다.

나가사키에 가면 도루코라이스라는 희한한 음식이 있다. 접시 하나에 볶음밥, 스파게티, 돈가스, 덴푸라 같은 걸 다 담아서 낸다. 원래 나가사키는 와카란(和華蘭: 일본과 중국 네덜란드라는 뜻으로 3개국의 문화가 교잡돼 있다는 의미)의 도시다. 그래서 국적 불명의 음식이 뒤섞여 있는데 이게 은근히 맛있다.

비프스튜 같은 양식도 흔히 볼 수 있다. 고급호텔에서 정통 프렌치 요리를 하던 아들이 아버지의 양식집을 물려받기 위해 퇴사하는 경우도 봤다. 물론 일본에서는 그다지 별난 일도 아니다. 양식의 전통과 인기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가 아는 유럽식 양식은 뭐라고 구별할까. 프랑스요리는 프렌치, 이탈리아는 이탈리안으로 부르면서 나눈다. 아무래도 역사가 양식보다 짧다.

일본의 우상인 영국의 카레가 현지화된 일본 카레

일본의 국민요리 카레라이스.
일본의 국민요리 카레라이스.
일본에서 꼭 먹어볼 음식에 카레가 들어간다. 카레는 일본이 영국을 모델로 삼았던 국가개혁과 맞닿아 있다. 영국처럼 자동차 좌측통행을 하고 있으며, 해군 중심의 군대를 육성한 것도 비슷하다. 영국은 한마디로 일본의 우상이었다. 음식문화도 많이 받아들였다. 지금도 일본의 중심지 카페에서는 로스트비프를 판다. 소 허릿살을 오븐에 천천히 구워 저며내는 음식이다. 그다지 맛도 없는데도 영국으로부터 받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카레가 그중 하나다. 영국은 인도 카레를 받아들여 자국화했고, 다시 일본에서 바뀌었다. 그 일본화된 카레가 한국으로 넘어온 것은 물론이다. 일본에서는 카레를 두 가지로 나눈다. 일본식과 인도식. 인도식은 문자 그대로 본토식이며, 도시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카레는 일본 전통음식인 우동에 들어갈 만큼 이미 일본화된 소스다.

맥주안주로 즐겨찾는 구운 만두인 야키 교자.
맥주안주로 즐겨찾는 구운 만두인 야키 교자.
일본편 첫 번째에 라멘을 언급했는데, 이것에 빠지지 않는 짝이 있다. 만두(교자)다. 중국식 음식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같이 판매하던 것이 일본인의 입에 각인됐다. 후쿠오카에서는 한입교자를 내놓고 있으며, 전국 어디든 교자 잘하는 집이 있다. 보통 라멘과 같이 팔며 아예 교자만 전문적으로 하는 집도 있다. 일본식으로 양배추를 썰어 넣어 비교적 덜 느끼하고, 대개는 구운 것(야키교자)을 의미한다. 라멘집에서 교자 한 접시를 시켜 전채처럼 먹거나, 생맥주 안주로 먹는다. 교자를 주메뉴로 해 전국적인 체인을 구성한 재벌(오즈교자)도 있을 정도다.

외식 아이템으로 인기 높은 ‘호루몬야키

’일본에서 요즘 가장 핫한 외식 아이템은? 바로 호루몬야키다. 원래 오사카를 비롯한 간사이와 규슈의 재일동포에 의해 시작된 이 요리는 거의 일본화됐다. 상당수 일본인은 아예 일본 음식인 줄 알 정도다. 김치를 꼭 파는데도 말이다. 호루몬이란 소의 내장을 의미하기도 하고, 버려진 것(호루모노)이라는 말이라고도 한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뒤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남은 재일동포 수가 100만명이 넘었다. 이들은 국적도 모호한 상태에서(45년 해방 후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갈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대한민국 수립 등으로 대혼란을 겪었다) 먹고살아야 했다.
 호루몬 야키라고 부르는 소내장 요리는 일본인들이 매우 좋아한다.
호루몬 야키라고 부르는 소내장 요리는 일본인들이 매우 좋아한다.
이들이 취급한 것이 바로 일본인이 버리다시피 한 소와 돼지의 내장으로 만든 요리. 구이, 국수의 고명, 조림 등 다채롭게 요리했으며 특히 1970~1980년대에 크게 번져나갔다. 현재는 일본인에 의해 운영되는 매장이 대부분이다.

호루몬야키집에 가면 한국인이 좋아할 메뉴가 많다. 일단 안창살이다. 하라미라고 부르는데, 일본은 안창살도 내장 쪽에 붙은 살이라고 해 싸게 취급한다(한국에서는 등심보다 비싼 게 안창살이다). 그 다음으로는 갈비(일본 발음으로는 가루비)다. 갈빗살도 일본은 한국처럼 비싸게 취급하지 않는다. 안창살과 갈빗살 모두 1인분(100~120g)에 700엔 정도. 수입육이라고 해도 엄청 싸다. 갈빗살도 여러 부위가 있는데 맛 차이도 있다. 그냥 갈비, 상(上)갈비 등으로 나뉜다. 그 밖에 내장도 좋다. 호루몬은 원래 내장을 의미한다. 특히 대창과 양이 일품이다. 한국에서는 비싼 부위지만 여기선 아주 싸게 먹을 수 있다(100g 정도에 700~800엔).

보통 이런 요리를 한국에서 일본식 불고기집이라고 하는데, 한국식의 얇게 저민 간장 양념이 아니라 불에 구워 먹는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간장 양념은 보통 고기에 가볍게 발라 굽는 정도. 김치도 있는데 달고 발효시키지 않은 특이한 맛이다.

품질 좋은 다양한 지역 맥주도 인기 높아

일본 지역맥주 ‘지비루’
일본 지역맥주 ‘지비루’
일본에서 술을 맛보는 것도 중요한 미식의 재미다. 일본은 맥주, 청주, 위스키, 소주 등이 고르게 발달했다. 칵테일도 한국보다 한 수 위다. 맥주는 알다시피 정평이 나 있다.

도리아에즈 비루! 라는 말이 있다. 맥주 상표가 아니라 ‘맥주 먼저’라는 뜻이다. 일본인은 식사나 술자리에서 맥주를 먼저 한잔 하고 시작할 정도로 익숙하다. 당연히 양조기술도 좋다. 지역 맥주도 다양해서 ‘지비루’라고 부른다. 혹시 작은 도시에 가면 지비루가 있는지 물어볼 것. 청주는 짧은 지면에 다 쓸 수 없지만 등급별로 지역별로 다채로운 청주를 맛볼 수 있다. 보통 니혼슈라고 부른다. 다이긴조, 준마이다이긴조 같이 쌀을 많이 깎아내고 숙성한 술은 풍요로운 맛을 선사한다.

▲일본 청주 ‘니혼슈’
▲일본 청주 ‘니혼슈’
최근에는 쌀을 23%만 남기고 깎아버려 풍부한 맛으로 양조하거나 원심분리, 미세여과 등의 현대식 기술을 쓰는 고급 청주도 출시돼 있다. 청주는 출신 지역을 따지는데, 니가타와 야마가타가 특히 유명하다. 그중 최고급 청주는 야마가타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음식을 먹을 때는 역시 청주가 잘 어울린다는 것도 경험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