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프루프

그레그 입 지음 / 이영래 옮김 / 21세기북스 / 408쪽 / 1만7000원

안전시스템의 역설
에어백·안전벨트 등만 믿고 난폭운전 늘어 도로 사고 급증
금융위기도 시스템 맹신 탓
"약간의 불안정성 감수해야 더 큰 재앙 막을수 있어"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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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슈퍼태풍 샌디가 미국 뉴욕을 강타했다. 지하철은 침수됐고, 맨해튼 거리엔 강물이 범람했다. 피해액은 700만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샌디의 위력은 피해액이 50억달러(2014년 기준)였던 1938년의 3급 허리케인 그레이트 뉴잉글랜드만큼 강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피해 규모가 훨씬 컸던 것은 수많은 사람이 위험을 내포한 장소에서 일하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튼튼한 제방을 비롯한 정교한 방재 체계가 자신들을 지켜줄 것으로 믿었다.

[책마을] 자동차는 훨씬 안전해졌는데…도로는 왜 더 위험해졌나

《풀 프루프》는 위험과 위기를 막기 위한 안전 시스템이 역설적으로 더 큰 재난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금융위기와 산불, 해일, 자동차·비행기 사고, 원자력발전 등 다양한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책을 쓴 그레그 입은 월스트리트저널의 경제부문 수석논설주간이다. 그는 안전을 위해 마련한 조치들이 오히려 삶을 위협하고 있다며 안전 시스템에 대한 과신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펠츠먼 효과’라는 게 있다. 1975년 시카고대 경제학자인 샘 펠츠만(Sam Peltzman)은 ‘자동차 안전규정의 효과’라는 논문에서 안전벨트, 에어백 같은 자동차 안전 기술이 도입된 뒤에도 도로는 이전보다 안전해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안전장치 덕분에 운전자의 사망은 크게 줄었지만 보행자의 부상과 재산 피해는 이를 상쇄할 만큼 늘었다는 것. 안전장치를 믿고 위험하고 난폭하게 운전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펠츠먼 효과는 약물사고, 풋볼이나 럭비처럼 격한 스포츠 경기의 사고율 등에서도 확인됐다. 미국프로풋볼리그(NFL)에 플라스틱 외피의 헬멧이 등장한 건 1939년이다. 헬멧은 치아, 턱이 부러지거나 코뼈가 내려앉는 등의 부상을 줄였지만 다른 종류의 부상은 증가시켰다. 1959~1963년과 1971~1975년풋볼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10% 감소했지만 영구 사지마비 환자는 세 배 이상, 목 골절 탈구를 유발하는 병변은 네 배 늘었다. 코치들이 헬멧을 보호장비로만 보지 않고 공격 도구로 삼게 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안전장치, 안전시스템은 쓸모없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안전장치를 믿고 두려움을 망각해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저자는 사람을 엔지니어와 생태주의자로 나눠 설명한다. 엔지니어는 우리가 지닌 지식과 능력의 최대치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더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만들려는 사람이다. 생태주의자는 그런 노력이 어쩌면 더 심각하고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며 엔지니어를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대공황,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가 생길 때마다 중앙은행과 정책당국은 연쇄 파산과 파국을 막기 위해 개입했다. 1979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된 폴 볼커는 미국 은행들의 파산을 막기 위해 바빴다. 이란혁명이 일어나면서 유가가 급등했고 물가가 크게 올랐다.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리자 미국에서 대규모 달러를 빌린 남미 구국가들의 도산 우려가 커졌다. 결국 미국 은행들의 파산을 막으려면 구제금융이 불가피했다.

위기나 불황이 생기면 정부와 중앙은행이 어떻게든 막아줄 것이라는 대마불사(大馬不死·too big to fail)의 믿음은 더 큰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었다. 세계가 겪은 두 차례의 금융위기도 안전 추구의 산물이었다. 리먼브러더스를 파산하게 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역시 그랬다. 역사상 미국 전역에서 집값이 떨어진 적은 없었으므로 그에 연동된 주택저당증권(MBS)도 안전하다고 여겼다. 금융혁신의 도움으로 리스크를 보다 감당하기 쉬워지자 빚을 내 집을 사는 일이 전보다 안전해졌다고 믿었다. 결국 더 많은 사람이 자산을 위험한 파생상품에 몰아넣었고, 안전을 위한 조치는 부메랑이 돼 재앙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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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심리적 특성상 재난과 위기는 피하기 어렵다. 안전장치를 마련하면 빈도는 줄지만 재앙의 규모는 더 커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리스크와 안정성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예컨대 사람을 해치지 않는 작은 범위의 산불을 허용하면 산림자원을 엄청나게 훼손하는 대형 산불을 막을 수 있다. 소소한 질환에 항생제 사용을 자제함으로써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위협이 있을 때 효과를 발휘할 여지를 남겨두는 게 좋다. 해일 발생지역에 초지를 조성해 범람원을 두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FRB는 공황, 불황, 인플레이션 종식의 임무를 맡은 엔지니어들의 조직이다. 하지만 그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다음 위기와 불황의 씨앗을 심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FRB는 불황이나 위기와의 싸움을 멈춰서도 안 되지만 나타나는 모든 충격에 힘을 사용해서도 안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보다 큰 재해를 제거하기 위해선 장기적이고 큰 보상과 안정성을 바라보며 현존하는 약간의 위험과 불안정성은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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