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당하고, 배신하는 핏빛 사랑…내 인생 닮아 무한몰입할 수밖에…"
트럭 운전기사, 경찰관, 보석 세공사 그리고 유명 오페라 가수.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들 직업을 모두 겪은 사람이 있다. 트럭 운전기사 시절이 있었던 테너 마리오 란자(1921~1959)도 울고 갈 정도다.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 등 세계 유명 극장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미국 출신 테너 칼 태너(55·사진)가 바로 그다.

드라마 같은 인생이지만 태너 본인에겐 너무 버거운 현실이었다. 꿈을 꾸고 사랑도 했지만, 수없이 좌절했고 다른 이에게 사랑을 뺏기기도 했다. 그가 베리스모(사실주의) 오페라에서 더 깊은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이유다.

태너는 6~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국립오페라단의 ‘팔리아치&외투’ 무대에 선다. 그는 4일 기자와 만나 “삶 그 자체를 다루는 베리스모 오페라 대표작으로 첫 내한 공연을 하게 돼 기쁘다”며 “나만이 할 수 있는 깊은 감정 이입으로 실감 나는 연기를 펼치겠다”고 말했다.

베리스모 오페라는 왕족, 귀족 등을 소재로 한 일반적인 오페라와 달리 밑바닥 인생들의 처절하고도 뼈아픈 삶을 담고 있다. 이번 공연은 비슷한 주제의 70분 단막극인 루제로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와 자코모 푸치니의 ‘외투’를 결합한 작품이다. 태너는 “비극과 비극을 결합하는 무대는 경륜이 없는 테너에겐 잘 맡기지 않는다”며 “누구보다 그 아픔을 잘 알고 있다보니 이 두 작품에 벌써 50회 넘게 출연했다”고 소개했다.

팔리아치는 유랑극단 단장 카니오가 아내 넷다의 치정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비극을 다룬다. 그는 극단 무대에 올랐다가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역할에 빠져들어 자제심을 잃고 넷다와 내연남 실비오를 죽인다. 카니오의 아리아 ‘의상을 입어라’는 이런 고통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다. “가슴이 찢어지고 아내를 빼앗겨도 팔리아초(광대), 너는 광대 의상을 입고 흰 분칠을 하고 희극을 연기해야 한다네.” ‘외투’는 이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사는 이들의 얘기다. 작은 배를 집 삼아 근근이 살아가는 미켈레는 아내가 자신을 돕던 젊은 인부 루이지와 사랑에 빠진 것을 알고는 루이지를 살해하고 만다.

태너는 이번 공연에서 정반대 역할을 맡는다. 팔리아치에선 카니오 역, 외투에선 루이지 역으로 나와 배신당한 자와 배신하는 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나와 비슷한 50대의 카니오, 30대의 루이지를 넘나들며 연기를 하게 됐다”며 “사랑을 하고 사랑에 버림받는 두 역할에 인간의 모든 감정을 잘 표현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내년엔 그의 인생을 다룬 영화도 제작된다. 마이클 키튼 감독이 연출, 잭 블랙이 주연을 맡을 예정이다. “처음에 영화를 만들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제 삶을 스크린을 통해 보고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얻기를 바랍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