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서울 혜화동 게릴라극장에서 만난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다음달 16일 열리는 게릴라극장 폐관식은 10년 넘게 극장을 지켜온 연극인들이 서로 수고했다고 위로하는 작은 잔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지난 27일 서울 혜화동 게릴라극장에서 만난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다음달 16일 열리는 게릴라극장 폐관식은 10년 넘게 극장을 지켜온 연극인들이 서로 수고했다고 위로하는 작은 잔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지난 27일 오후 1시 서울 혜화동 게릴라극장. 바닥에 각종 공구와 소품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배우들은 직접 땀을 흘리며 무대를 꾸미는 중이다. 30일부터 공연하는 연극 ‘황혼’을 위해서다. 객석에 앉아 있던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47)가 극장을 쭉 둘러보며 혼잣말을 했다. “이제 정말 없어지는구나.”

‘황혼’은 연희단거리패의 상징인 게릴라극장의 마지막 공연이다. 2006년 ‘오프(off) 대학로’인 혜화동에 문을 연 이래 ‘소극장 연극의 메카’로 불려왔지만 다음달 16일 폐관한다. 극단의 재정난이 심해져서다. 이윤택 예술감독과 김 대표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르면서 지난 3년간 각종 공공 지원이 끊어진 결과다.

“게릴라극장은 연희단거리패 창단 20주년을 맞아 지은 곳입니다. 공간에 쌓여 있는 느낌이 좋아서 박근형, 고(故) 김동현 연출 등 많은 연극인들이 아끼고 사랑해 주셨어요. 마음 맞는 연극인들과 가열하게 만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80석 규모의 소극장은 인간 본질을 끊임없이 고찰하려는 이들의 ‘공동체적 열망’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좋은 공연을 보기 위해 관객들은 지하철 혜화역에서도 멀리 떨어진 골목길 극장까지 기꺼이 찾아왔다. 극장을 운영하는 연희단거리패는 대관료 대신 수익의 절반만 받는 방식으로 가난한 극단들을 지원했다. 이 덕분에 수많은 실험극이 탄생했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블랙리스트 바람은 매서웠다. 이 예술감독이 쓴 희곡 ‘꽃을 바치는 시간’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창작기금 지원 공모에서 희곡 분야 1위로 뽑혔으나 최종 탈락했다. 지난해 3월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이 콜롬비아에서 열린 이베로 아메리카 시어터 페스티벌에 국내 극단 중 유일하게 초청됐으나 정부의 항공료 지원을 받지 못해 극단 비용으로 해외 공연을 가야 했다.

살길을 찾아야 했다. 빚을 갚기 위해 게릴라극장과 단원들의 수유리 숙소를 매물로 내놓고 극장을 꾸려갈 만한 새로운 공간을 모색했다. ‘오프 대학로’에서도 밀려난 연희단거리패는 지난해 10월 명륜동 언덕 위 막다른 골목의 허름한 2층짜리 주택을 개조해 ‘연희단거리패 30 스튜디오’를 개관했다. ‘이상주의 연극공동체’를 표방하는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의 서울 숙소 겸 극장이다. 작은 카페 ‘꽃을 바치는 시간’도 운영한다.

김 대표는 “막다른 골목에서도 마지막까지 생존해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며 “연극 환경이 더 어려워졌을 때, 진짜 연극이 하고 싶어 남은 배우 몇 사람으로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공호’ 같은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상업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더욱 어려워질 연극 환경에서 마음껏 연극을 하려면 경제적으로 자립된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 예술감독의 뜻이 반영됐다.

정부가 원망스럽지 않을까. 김 대표는 오히려 “지난 3년은 굉장히 치열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했다. “정부 지원이 끊기고 나서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관객들의 지원이 늘어났어요. ‘백석우화’ ‘갈매기’ ‘하녀들’ 같은 공연은 연일 매진을 기록했고, 자리가 없어서 보조 의자까지 깔고 공연할 때가 많았습니다. 상업극이 아니라 인문주의적인 공연만 올리는 극장인데도 관객은 우리편이었어요.”

자발적인 후원회도 생겼다. 회원들은 2만~3만원씩 내 포스터, 프로그램북 등의 인쇄 비용을 대줬다. “정부나 기업의 후원이 아니라 중산층, 소시민들이 힘을 보태주셔서 의미가 더 컸어요. 관객이 얼마나 고맙고, 또한 무서운 존재인가를 느낄 수 있었죠.”

폐관 공연 ‘황혼’은 오스트리아 극작가 페터 투리니의 작품이다. 배우 명계남이 70대 시각장애인 역을, 김 대표가 50대 창녀 역을 맡는다. 왜 이 작품을 골랐을까. 이 예술감독은 “네가 게릴라극장에 얼마나 마음이 많겠느냐. 일단 네가 나오는 공연으로 하자”고 했단다. 김 대표는 “‘황혼’은 세상 밖으로 밀려난 두 예술가가 자신의 존엄함을 지키려는 이야기인데 워낙 격조와 유머, 절실함까지 담고 있어서 이 작품으로 끝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