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일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약장수 ‘둘카마라’ 역을 맡은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아트앤아티스트 제공
오는 11일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약장수 ‘둘카마라’ 역을 맡은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 아트앤아티스트 제공
베이스 바리톤 사무엘 윤(46)은 강렬하고 선 굵은 악인 연기로 명성이 높다. 지난해 8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오페라 콘체르탄테(콘서트 형식의 오페라) ‘파우스트의 겁벌’에선 파우스트의 영혼을 파괴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독일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이 역으로 이름을 알렸다. ‘토스카’의 스카르피아와 ‘오텔로’의 이아고 등 오페라 최고의 악인 캐릭터를 두루 섭렵했다.

사무엘 윤이 11일 전혀 다른 역할로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오페라 콘체르탄테 ‘사랑의 묘약’에서 약장수이자 사기꾼 ‘둘카마라’를 맡았다. 둘카마라는 유쾌하면서도 익살스러운 인물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악인 연기로 확고한 위치에 오른 사무엘 윤이 돌연 둘카마라 역을 맡은 것은 왜일까. 9일 서울 정동극장 인근 카페에서 만난 그는 “메피스토펠레도, 둘카마라도 모두 내 안에 잠재돼 있는 하나의 색깔일 뿐”이라며 “넘지 못할 성역은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인간의 모든 감정, 표현하고 싶어”

사무엘 윤은 동양인 성악가로는 드물게 유럽 무대에서 큰 활약을 펼치고 있다. 독일 쾰른 오페라극장에서 18년째 활동하며 종신 단원이 됐다. 2012년엔 바그너 음악의 성지로 불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한국인 최초로 주역을 맡았다. 이번에 도전하는 둘카마라는 남녀 주인공인 네모리노(매튜 그릴스)와 아디나(이윤정)를 이어주기 위해 가짜 ‘사랑의 묘약’을 파는 역할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섹시하면서도 화려한 약장수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에요. 누가 봐도 약을 사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CF 모델 같은 둘카마라인 것이죠.”

그가 이 역할을 맡자 ‘조연’인 둘카마라가 ‘주연’이 되는 효과를 기대하는 이들도 많다. “둘카마라는 원작에선 조연이지만 이번 공연에선 주연들과 함께 어울려 빛나게 될 거예요. 이번 공연의 타이틀이 왜 ‘사무엘 윤의 사랑의 묘약’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연기 변신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9월 시카고 리릭오페라에서 ‘라인의 황금’의 알베리히 역을 맡기도 했다. 알베리히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온 골룸과 같은 인물이다. “인간의 선악의 감정을 다 갖고 있는 이 역할을 하면서 기성복이 아닌 맞춤옷을 입은 듯한 기분과 큰 환희를 느꼈어요. 오페라 자체가 인간의 희로애락을 다 담고 있는 만큼 저도 그 모든 걸 표현해보고 싶어요. 내년엔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에도 도전하면서 연기 스펙트럼을 최대한 넓힐 겁니다.”

◆“후배들에게도 오페라 데뷔 기회를”

그는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달리지 않는다. 2015년부터 후배들을 위한 마스터 클래스를 열고 있다. 한국인 성악가를 매년 한 명씩 뽑아 쾰른 오페라극장의 연수 프로그램인 오페라 스튜디오에 보낸다.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15명 정도를 마스터 클래스에서 뽑아서 그중 쾰른으로 보낼 사람을 선발했는데 이번엔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36명이나 뽑게 될 것 같다. 지원 서류를 보느라 어제도 잠을 거의 못 잤다”며 웃었다. 올해 마스터 클래스는 오는 12~14일 서울 한남동 일신홀에서 열린다.

그가 후배들을 돕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음악을 공부하는 모두가 유능한 성악가가 될 수 없는 건 확실해요. 하지만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저는 기적처럼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 축복을 후배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이런 열정은 항상 공연 전날까지도 이어진다. 공연 일정, 시간과 관계없이 후배 성악가들의 레슨을 일일이 무료로 봐준다. “시간이 날 때 도와주는 건 정말 도와주는 게 아닙니다. 힘들 때나 시간이 없을 때도 돕는 게 정말 도와주는 거죠. 그들을 향한 문은 언제나 열려 있을 겁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