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장은 춥고 좁다"…미국·유럽·홍콩 파고드는 K아트
지난해 국내 미술품 경매회사의 낙찰총액(1700억원) 중 홍콩 경매 비중이 40%를 넘어선 것은 양면적이다. 국내 미술시장이 그만큼 부진하다는 얘기인 동시에 2015년부터 힘을 받고 있는 단색화 열기에 힘입어 해외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다. 한국미술의 ‘세컨드 마켓’으로 부상한 홍콩을 비롯해 미국 유럽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미술계의 해외 진출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화랑업계는 ‘아트바젤 홍콩’ 등 굵직한 아트페어에 잇달아 참가할 예정이고, 경매회사들은 홍콩 경매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단색화가 정상화를 비롯해 박서보 김수자 정우범 등 작가 20여명은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유명 미술관과 화랑에서 전시를 하고 있거나 준비 중이다. 국정 혼란과 천경자·이우환 위작 논란으로 침체된 국내 시장이 당분간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이 주된 이유다.

◆해외 아트페어 진출 러시

"한국시장은 춥고 좁다"…미국·유럽·홍콩 파고드는 K아트
국내 미술시장의 조정이 길어지자 화랑업계는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좋은 미국 유럽 중국 등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제갤러리를 비롯해 아라리오갤러리, PKM갤러리 등 9개 화랑은 오는 3월22~25일 홍콩섬에서 열리는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인 ‘아트 바젤 홍콩’에 참가해 해외 유명 화랑들과 판매 경쟁을 벌인다. 청작화랑과 갤러리 미즈 등 군소 화랑도 스위스 취리히, 독일 쾰른, 미국 마이애미 등의 아트페어 참가를 준비하고 있다.

경매회사들은 올해도 홍콩시장에 ‘올인’한다는 전략이다. 서울옥션은 지난해 홍콩 경매를 통해 480억원대 매출을 올린 만큼 올해도 3월22일을 시작으로 5월, 11월 세 차례 현지에서 경매를 할 예정이다. K옥션은 서울 메이저(4월, 6월, 10월, 12월) 경매 출품작들의 프리뷰 행사를 홍콩에서 열어 외국 애호가를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유명작가 20여명 해외 ‘출격’

작가들도 미국과 유럽, 아시아 지역 개인전과 그룹전을 통해 ‘K아트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영상설치작가 정연두 씨는 캐나다 퀘벡비엔날레에 참가해 ‘K아트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고, ‘보따리 작가’ 김수자 씨는 9월 리히텐슈타인의 쿤스트뮤지엄에서 개인전을 열고 영상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미국 유럽 중국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설치작가 양혜규 씨는 다음달 17일 홍콩 파라사이트에서 개인전을 시작한다.

5월13일 개막하는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도 한국 작가의 활약이 기대된다. 코디 최와 이완 씨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가하고, 김성환과 이수경 씨는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서 세계적인 작가 120명과 작품 경연을 벌인다. 영상미술가 임흥순 씨가 2015년 본전시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만큼 이들의 입상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미술사조로 자리 잡은 단색화 작가들의 해외 전시회도 줄을 잇고 있다. 박서보 화백은 영국 런던 화이트큐브갤러리 개인전에 2000년 이후 제작한 컬러 ‘묘법’ 시리즈 20여점을 걸었다. 김기린 화백은 뉴욕 리먼머핀갤러리 개인전(3월25일까지)을 통해 뉴욕 화단에 단색화를 홍보하고 있다. 정상화 하종현 화백은 파리와 런던에서 차례로 개인전을 열어 국제적 인지도를 넓힐 계획이다.

해외 미술관의 단색화 작품전도 잇달아 열린다. 미국 시카고미술관은 4월9일까지 권영우 정창섭 정상화 하종현 박서보 화백의 작품을 전시하고, 중국 상하이 유즈미술관은 9월 단색화 기획전을 마련해 ‘K-아트’의 독창성을 알릴 계획이다.

◆연간 20억원뿐인 ‘미술 한류’ 지원

화랑과 작가들이 맨손으로 ‘미술 한류’를 개척하고 있지만 정부 지원은 여전히 턱없이 미흡하다. 한류 확산을 위한 지원이 미술보다는 음악·드라마·공연·방송에 편중돼 있어서다. 올해 미술 한류 지원금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비용 8억원을 비롯해 화랑들의 해외 아트페어 지원(5억원), 국내 작가 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4억원), 작가들의 온라인 개인전 ‘코리안 아티스트 프로젝트’(1억8000만원), 한국미술 해외 출판 지원(1억7600만원) 등 20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미술 한류를 돕는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미술계 인사들이 입을 모으는 이유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은 “해외 유명 컬렉터들이 최근 한국 미술품을 잇달아 사들이면서 국내 작가의 해외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외국 수요층이 늘고 있는 만큼 해외 아트페어와 전시에 더 많은 국내 작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