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도시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라라랜드’. 이 영화는 뮤지컬 형식을 통해 도시의 적나라한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대도시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라라랜드’. 이 영화는 뮤지컬 형식을 통해 도시의 적나라한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개봉돼 선풍적인 인기를 끈 영화 ‘라라랜드(La La Land)’의 제목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로스앤젤레스의 별명이고, 또 하나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상태’란 의미다. 이 영화는 뮤지컬이란 비현실적 틀을 통해 도시의 적나라한 현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도시는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모여들도록 만든다. 도시에선 계층이 분명하게 나뉜다. 도시는 혼란에 가득 차 보인다. 하지만 그 혼란마저도 삼켜 버리는 공간이다. 도시는 달콤한 유혹이자 잔인한 현실이다.

[책마을] 끝없는 혁신의 현장…도시에서 미래가 만들어진다
미국 도시학자 앤드류 리즈의 《도시, 문명의 꽃》은 도시에 공존하는 극단적 다양성과 도시의 형성 과정, 세계 역사상 크나큰 명성을 자랑해 온 대도시들의 화려함과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어두운 측면에 대해 간결하게 서술한 책이다. 200여쪽의 분량에 유럽과 미국,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에 형성됐던 수많은 도시를 열거한다. 마치 거울을 들고 타임머신으로 시공간을 이동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책은 상당히 쉽게 읽힌다. 세계사에 대해 약간의 지식만 있다면 한 장 한 장 술술 넘길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읽다 보면 궁금증을 갖게 만든다. “왜 이토록 많은 도시 이야기를 이처럼 얇은 책에 다 담으려고 했을까.”

저자는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밝힌다. 그는 “아마도 도시를 건설하는 능력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것 같다”며 “특정 지역에 있는 도시들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알고 싶은 독자들은 참고 도서 목록을 보라”고 말한다. 그는 도시의 역사를 세계문명사적 시각으로 조명한다. 각 도시는 저마다 독특한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그 이야기엔 역사와 지역을 넘나드는 보편성이 있다. 저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이 지점이다.

우선 도시의 탄생 배경과 성장 과정이 도시마다 매우 비슷하다. 인간이 기원전 4000년대 중반, 신석기 혁명으로 잉여 식량을 많이 확보하게 되면서부터 도시는 형성되기 시작했다. 도시엔 높은 성곽과 잘 발달된 도로가 있고, 도시를 움직이는 나름의 체계적인 시스템이 존재한다. 한 공간 안에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달하는 인구를 수용할 수 있다.

도시는 곧 문명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시빌라이제이션(civilization·문명)’이란 단어의 어원은 ‘도시국가’란 뜻의 라틴어 ‘시비타스(civitas)’다. 지배계층은 도시를 기반으로 권력을 강화했다. 반면 때로는 권력자들이 만든 도시가 체제 전복과 혁명의 근원지로 변모하기도 했다. 도시 문화는 빠르게 인근 지역으로 확산됐고, 도시엔 청운의 꿈이 모여들어 왕성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도시들 대부분이 현재까지 살아남아 계속 변화하며 생존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당나라의 수도이자 당대의 국제 도시였던 중국 장안(현재의 시안)을 비롯해 에도막부가 있었던 일본 도쿄, 이라크 바그다드,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영국 런던, 이탈리아 로마, 독일 베를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수많은 도시가 오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체 무엇이 도시를 살리고 있을까. 저자는 주저없이 시민의 힘을 꼽는다. 사람이 없는 도시엔 힘이 생성될 수 없다. 시민이 있었기에 기술과 정치, 문화 등 인류의 모든 영역에서 끝없이 혁신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는 “도시는 오랫동안 미래가 형성되는 장소로서 제 역할을 다해 왔다”며 “인구 1000만명이 넘는 ‘메가시티’ 탄생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오늘날, 도시가 나아가는 길은 곧 인류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도시를 마냥 찬양하진 않는다. 저자는 도시의 빈부격차와 환경 문제가 낳은 삶의 질적 차이를 지적한다. 특히 위생에 대한 계층적 차별과 범죄율에 대한 지적은 아주 냉정하다. 과연 도시는 꿈을 이루는 공간일까, 그렇게 꿈꾸도록 만드는 공간일까. 책을 덮는 순간 ‘라라랜드’가 떠오른 이유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