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고야의 겨울
18세기 스페인 화단의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는 50년 이상 궁정화가로 활동하며 귀족층의 화려한 삶을 화면에 녹여냈다. 인간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비합법적인 왕권을 가까이서 봐온 그는 대담하고 빠른 붓질로 귀족들의 감정뿐만 아니라 권력의 속성과 광기, 서민들의 고달픈 삶까지도 세세하게 묘사했다.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4세가 군림한 시절 그린 ‘겨울’은 사계절 시리즈 중 대표작으로 권력에 짓밟힌 서민들의 애한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거센 눈바람 속에 농부, 군인, 사냥꾼이 살을 에는 듯한 삭풍을 정면으로 맞으며 걷는 모습을 극적으로 잡아냈다. 도포를 뒤집어쓰고 한기를 막아보려 하지만 비집고 들어오는 겨울바람의 기세에 눌린 이들의 얼굴에서는 고통스러운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얼룩개도 자연의 맹위에 저항하는 자세를 보이지만 슬며시 꼬리를 내리며 겁을 먹는다. 앞으로 닥쳐올 무서운 사건을 예민한 후각으로 감지한 것일까? 그 후 1808년 5월 마드리드는 프랑스군에 점령됐고, 고야는 1814년 프랑스군에 대항해 봉기한 스페인 민중들이 체포돼 처형되는 살벌한 장면을 ‘1808년 5월2일’과 ‘1808년 5월3일’이란 제목으로 화폭에 남겼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