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들 연임·교체 시기 몰렸지만 인선 작업 '올스톱'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의 '불똥'이 문화체육관광부가 관할하는 주요 국공립 예술기관과 공연단체로 튀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이은 박 대통령 탄핵소추로 국정공백이 현실화하면서 내년 초에 몰린 예술기관·공연단체장 인사가 속도를 못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일부 공연단체에서는 이맘때면 이미 진행됐어야 할 내년도 작품 공개와 티켓 오픈이 미뤄지는 등 활동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15일 공연계에 따르면 수장의 임기가 만료됐거나 조만간 끝나는 국공립 예술기관 또는 공연단체는 국립중앙극장(국립극장)과 아시아문화의전당, 국립극단, 국립발레단,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 소속 무용단과 창작악단 등 7개다.

예산 대부분을 국고에서 지원받는 준국립단체 성격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까지 합치면 모두 8개에 달한다.

이들 기관·단체장의 인선 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최종 임명권자는 문체부 장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코리안심포니 예술감독은 자체 이사회에서 결정하나 이사진 구성 등 주요 의사결정과정에 역시 문체부가 상당 부분 관여한다.

이 가운데 내년 1월 임기가 종료되는 김해숙 국립국악원장만 1년 연임이 결정됐을 뿐이다.

나머지는 후보자 인선이 진행 중이거나 기존 수장의 연임 여부를 저울질 중이나 그 속도가 매우 더디다는 게 문제다.

내년 1월 중순 안호상 극장장의 임기가 끝나는 국립극장과 개관 1년이 넘도록 방선규 전당장 직무대리 체제인 아시아문화의전당의 경우 인사혁신처에서 공모를 진행 중이다.

아시아문화의전당장의 경우 앞서 3월과 6월에도 인사혁신처에서 후보자들을 추천했으나 문체부에서 모두 '적격자 없음'으로 결정해 이번이 3차 공모다.

국립극장과 아시아문화의전당은 그나마 일정에 따라 공모가 이뤄지고 있지만 나머지 단체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문체부가 바로 임명하는 국립발레단과 국립극단의 경우 강수진 예술감독과 김윤철 예술감독의 임기 만료가 내년 2월 초로 다가왔다.

하지만 두 감독의 연임이나 신규 선임에 대한 논의가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립국악원 소속 무용단과 창작악단의 예술감독은 올해 상반기에 이미 임기가 끝나 수개월째 공석인 상태다.

이들 단체의 예술감독 임명은 국립국악원에서 공모로 복수 후보자를 추천하면 문체부 장관이 최종 낙점하는 방식인데 '대상자 없음' 결론이 나 새로 공모절차를 밟고 있다.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 역시 임헌정 예술감독의 임기가 내년 1월 말까지인데 후임 인선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이 단체는 당연직 3명(대표와 문체부 공연예술전통과 과장, 예술의전당 사장)을 포함한 이사 7명이 예술감독을 임명하는데 지난 9월로 임기가 만료된 이사회를 아직 새로 구성하지 못했다.

이처럼 차기 수장 인사에 윤곽이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일부 단체는 내년도 공연 준비에 차질을 빚고 있다.

예술감독은 공연단체의 레퍼토리 선정과 객원 출연진 섭외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이들의 거취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내년도 작품 라인업을 발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라인업 공개가 늦어지면 티켓 판매 일정도 같이 미뤄진다.

실제로 국립발레단의 경우 내년에 올릴 작품들을 아직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2월 초에 일찌감치 올해 레퍼토리를 모두 발표했던 것과 대비된다.

발레단 관계자는 "내년 첫 공연이 3월로 잡혔고 늦어도 두달 전인 1월에는 티켓을 오픈해야 하는데 언제 레퍼토리를 공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예전에 예술감독이 교체되면서 전임자가 기획했던 작품의 공연이 무산된 사례도 있어 더욱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도 비슷한 상황이다.

내년 첫 정기 연주회가 1월 중순이다 보니 티켓 판매를 더 늦출 수 없어 1∼3월 공연만 라인업을 공개하고 예매를 시작했다.

현시점에서 진행해야 할 2018년 이후 공연 기획에도 상당한 차질이 생겼다.

클래식 음악 공연은 연주회 일정보다 짧게는 1년, 보통은 2년 이상 앞서서 협연자와 연주 레퍼토리 등을 조율하는데 이를 결정할 예술감독의 거취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 난감해 하고 있다.

코리안심포니 관계자는 "외국의 지명도 있는 협연자는 늦어도 2년 전에 섭외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장기 프로젝트는 엄두도 못 낸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은 '최순실 게이트'로 직격탄을 맞은 문체부가 탄핵정국까지 더해지면서 예술기관·단체장 인사에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과 맞물려 있다.

공연계에서는 최종 인사권자인 조윤선 장관이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의혹 등과 관련해 야당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처지여서 인사권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국립 공연단체 관계자는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공립 단체의 수장들이 물갈이되고 그 과정에서 낙하산 의혹 등 온갖 구설이 분분했던 것이 공연계의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현 상황에서는 (조 장관이) 인사와 관련해 어떤 결정을 내려도 또 다른 의혹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체부의 공연단체 담당 사무관은 "(예술감독을) 연임시킬지 새로 임명할지부터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진행을 빨리 못하고 있다"며 "운영에 차질이 없게끔 최대한 서두르려고는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inishmor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