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기획전 도록(오른쪽)에 실린 18세기 ‘백자소문대병’.
2003년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기획전 도록(오른쪽)에 실린 18세기 ‘백자소문대병’.
14년 전 일본 도쿄에서 벌어진 한국 문화재 강도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라 고미술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범행을 교사한 일당 중 한 명이 최근 검찰에 자수하면서 미궁에 빠졌던 이 사건이 해결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2002년 5월29일 일본 도쿄의 고미술상 사카모토 가즈지 씨 집에 강도 2명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사카모토씨와 부인을 흉기로 위협해 지하 창고에서 국보급 한국 도자기 18점을 갖고 달아났다. 강탈된 도자기는 청화백자운룡문호, 청화백자오조용호, 용항아리 등으로 시가가 총 500억원에 달한다.

상심하던 사카모토씨가 자신의 도자기를 다시 만난 것은 2003년. 재단법인 세계도자기 엑스포가 2003년 9월 발행한 ‘조선도자기 500년전’ 도록에 강도 당한 18세기 ‘백자소문대병’이 실려 있었던 것. 사카모토씨는 한국 경찰에 강도사건을 신고해 강도범 김모씨(당시 42세)와 송모씨(당시 38세)가 붙잡혔다. 하지만 강탈된 도자기는 이들의 손을 떠난 뒤였다. 범행을 교사한 사람들도 잡지 못했다. 결국 강탈된 도자기는 공소시효(7년)를 넘겼고, 강도사건 역시 공소시효가 임박해 있다.

이런 시점에서 교사범 중 한 명이 최근 자수해 사건 해결에 청신호가 켜졌다. 고미술업계에 따르면 고미술상 정모 씨(64)는 지난 1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자수해 자신이 이 사건 교사범 중 한 명이라고 밝혔다. 정씨는 “서울 인사동에서 고미술품 유통업을 하는 김모씨(60)가 배후에서 이 사건을 사주했고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김씨는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나를 중국으로 도피시켰고, 경찰과 검찰에서 허위 진술도 강요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이어 “2003년 붙잡힌 강도범들은 단순절도범으로 처벌됐고, 범행을 사주한 진짜 주범의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강도범들은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김씨는 범행 개입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서다.

수사가 지연되고 흐지부지되면서 사건은 엉뚱하게도 한국고미술협회로 번졌다. 김종춘 한국고미술협회장이 중국 지린성 ‘고구려 벽화 불법 도굴’ 사건에 가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감 회장이 현존 최고(最古)의 고려시대 금속활자라며 문화재 지정을 신청한 ‘증도가자(證道歌字)’가 가짜라는 주장도 나왔다.

도자기 강도사건 이후 중국 단둥에서 생활한 정씨는 “김씨의 지시를 받고 한국고미술협회를 장악하기 위해 내가 이 같은 소문을 퍼뜨렸다”며 “내가 진 빚 10억원을 갚아주고, 현금 50억원을 준다는 말에 현혹됐다”고 털어놨다. 정씨는 또 “2011년 5월 귀국한 뒤에도 김씨가 ‘김 회장의 반대세력들이 그의 비리를 제보해서 수사하고 있으니 협조하라’고 해서 서울 북부지검에 사실을 왜곡해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고미술업계는 도난품이 유통될 경우 또 다른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김 회장은 “도자기 강도사건 이후 고미술시장에서 음해와 음모가 난무해 피해가 너무나 컸다”며 “강도짓을 사주한 공범이 자수했으므로 검찰이 사건의 전모를 조속히 밝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