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화약은 어디서 났을까…상인들이 본 임진왜란
외세가 침략하자 왕은 피난을 가고 신하는 뿔뿔이 흩어졌다. 가마꾼마저 달아나 왕비는 비를 맞으며 밤길을 걸었다. 군대는 싸울 의지를 잃고 무기를 연못에 던졌다. 임진왜란 당시 국가 체제가 무너진 조선의 모습이다. 이순신·권율 장군이 조정에 “화약과 화살을 보내달라”고 요청해봐야 나올 턱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순신은 막대한 전쟁물자를 조달해 왜군을 꺾었다. 권율도 행주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뒀다. 이들이 전쟁에서 사용한 물자는 어디서 나온 걸까.

시나리오 작가 이경식·김동걸 씨가 쓴 역사소설 《상인의 전쟁》(일송북)은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당시 이순신의 수군은 전투마다 1만2000㎏가량의 화약을 썼다. 권율의 군대는 행주대첩에서 적게는 13만발, 많게는 30만발의 화살을 쏜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들은 끈질긴 조사 끝에 《난중일기》에 나오는 ‘변광조’라는 인물이 이 물자를 공급했다고 결론지었다. 《난중일기》에는 “변광조가 와서 만났다”는 한 대목만 나오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자세한 사정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저자들이 우연히 구한 별도의 고서(古書)에 변광조의 행적이 자세히 적혀 있어 이를 알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들은 “구체적이고 검증된 사료를 바탕으로 허구를 정밀하게 교직해 이번 작품을 썼다”고 설명했다.

작품 속 변광조는 유구국(현 오키나와)에서 중계무역을 하는 대상(大商)이다. 조선이 전란에 휩싸이자 이를 계기로 돈을 벌기 위해 조선에 온다. 변광조는 일본이 조선을 삼킬 경우 자기가 만들어 놓은 상로(商路)가 쓸모없어질 것임을 깨닫고 조선을 돕는다. 이 과정에서 일본 수군을 막기 위해 분투하던 이순신, 한양 방어작전을 펼치던 권율에게 물자를 공급한다.

조선의 도자기 장인을 ‘본의 아니게’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왜군이 장인들을 납치하려고 하자 변광조는 이들을 강화도로 피신시킨다. 거기서 도자기를 만들게 한 뒤 이를 내다 판다. 나중에는 조선 조정 내부의 권력투쟁에도 개입한다. 당시 조정에서는 실사구시의 개혁 추진과 성리학적 가치관의 강화를 두고 다툼이 일고 있었다. 변광조는 조선에 흥상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개혁 세력에 협력한다.

시대적 배경은 임진왜란 직전부터 선조(1552~1608)의 돌연사 및 광해군의 즉위 시점까지다. 풍전등화처럼 흔들리는 조선의 운명을 역사소설로서는 특이하게도 ‘상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저자들은 “세계 경제의 흐름 속에서 당시 조선이 거머쥘 수 있었지만 놓쳐버리고 만 근대화의 기회를 조명했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