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반다문화·반환경?…보수주의의 편견을 깨다
당태종 이세민이 신하들과 나눈 대화를 모은 《정관정요》에는 창업(創業)과 수성(守成)을 논하는 장면이 나온다. “창업과 수성 중 어떤 게 더 어려운가”란 당태종의 질문에 방현령은 창업, 위징은 수성이라 대답한다. 당태종은 위징의 손을 들어준다. “창업의 어려움은 과거의 일이지만, 수성의 어려움은 신하들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현재의 일이다.”

[책마을] 반다문화·반환경?…보수주의의 편견을 깨다
영국 대표적 보수주의 인문학자인 로저 스크런튼의 《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 (원제: How To Be a Conservative)를 읽다 보면 당태종이 말한 ‘수성의 이치’가 떠오른다. 스크런튼이 말하는 ‘진정한 보수주의’와 당태종과 위징의 ‘수성’ 메시지는 똑같다. “사람과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란 것이다.

저자는 보수주의를 “인간과 공동체의 자유가 이룩해낸 훌륭한 유산을 열린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자신이 보수주의자가 된 이유가 열혈 노동당원이던 아버지에 대한 반발 심리가 컸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를 논할 땐 체제 전복을 꿈꾸는 급진주의자지만, 고향 마을 건축물 보존에 앞장서고 조국을 사랑한 아버지의 이중적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신봉한 사회주의의 핵심에는 뿌리 깊은 보수적 본능이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스크런튼은 보수주의를 특정 이념 또는 ‘이즘(ism)’의 틀에 가두려 하지 않는다. 그에게 보수주의는 일상과 사회, 시대와 국경을 가로지르는 견고하고도 유연한 창과 같은 존재다. 그는 보수주의를 경제와 외교, 환경, 교육, 문화 등 다방면으로 살펴본다. 에드먼드 버크와 벤저민 디즈레일리,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 등 영국의 대표적 보수주의자들에 대해서도 상세히 논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것을 부수려고만 하거나 인간을 압박해온 이론과 역사 등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소중한 전통과 유산, 개인의 자유를 지키려는 원칙과 신념이 곧 보수주의”라며 “보수주의란 훌륭한 유산은 쉽사리 파괴되지만 쉽사리 창조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라고 설파한다.

저자가 가장 통렬하게 비판하는 대목은 ‘과거에 쌓아 올린 유산을 향유하면서도 과거를 부수자고 하는 행동’이다. 프랑스 68운동 세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68운동 세대에 대해 “안락과 흥취의 토대에서 허황된 그림자를 위해 파괴에 나선 사람들”이라고 꼬집는다.

경제 부문의 보수주의에는 “자유경제를 운영하는 주체는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유로운 개인’이란 점을 결코 놓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스크런튼은 “사유재산 체제에서의 경제적 거래는 내 것과 네 것의 구분뿐 아니라 너와 나의 관계에도 좌우된다”며 “책임이 없으면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신뢰가 없으면 자유경제 특유의 미덕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서술한다.

저자는 종교와 교육, 다문화 시대와 환경 문제 등에 관해 흔히 일반인이 갖는 ‘보수주의자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 우선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당당히 밝히며 ‘보수주의=기독교’란 선입견을 가진 일반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그는 “어떤 종교를 믿고 어떤 개인적 신념을 갖고 있든 간에 우리는 탁월하고 진귀한 유산을 함께 물려받은 사람들”이라고 강조한다.

교육 문제는 “무조건적인 평등을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엄격한 시험, 다양한 교육제도가 아이들의 능력에 맞는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도록 도울 수 있다”며 영국의 공교육 체제를 비판한다. 다문화 및 환경 문제를 논하면서도 약자를 보호하고 연대하며 공멸하지 않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수주의의 근원과 참뜻을 찾으려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안내서 역할을 해 주는 책이다. 다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권에 담으려다 보니 곳곳에서 ‘붕 뜬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