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금강, 1894’의 이성준 음악감독이 지난 24일 리허설을 하고 있다. 성남아트센터 제공
뮤지컬 ‘금강, 1894’의 이성준 음악감독이 지난 24일 리허설을 하고 있다. 성남아트센터 제공
이성준 음악감독(35)은 뮤지컬계에서 ‘천재 작곡가’로 꼽힌다. 2005년 서울대 음대 재학 시절 데뷔작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지금까지 공연되는 스테디셀러다. 스코틀랜드왕립음악원에서 음악을 공부한 뒤 돌아와 ‘삼총사’ ‘잭 더 리퍼’ ‘모차르트!’ 등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각색해 흥행시켰다. 2014년 만든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대극장 뮤지컬로는 처음으로 일본 대형 기획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수출했다.

그가 새로운 창작 뮤지컬에 도전한다. 이번에는 역사물이다. 다음달 1~4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금강, 1894’다. 신동엽 시인이 1967년 발표한 장편 서사시 ‘금강’을 뮤지컬화한 작품이다.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전봉준의 머리를 가져오면 관비로 끌려간 동생을 돌려보내겠다는 제안에 동학도의 근거지로 들어간 하늬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모습을 그렸다. 손호영, 이건명, 양준모, 박지연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최종 리허설을 앞둔 이 음악감독을 만났다.

“‘금강, 1894’는 저에게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 작품입니다. 영화 ‘덕혜옹주’ ‘밀정’ 같은 작품을 보면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이렇게 보여줄 수도 있겠구나’ 싶었거든요. 고리타분하게만 생각했던 역사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만들 수도 없고, 설민석 강사처럼 역사 강의를 할 수도 없지만 저만이 가진 재능으로 역사를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서사시 ‘금강’을 몇 번씩 읽었다. ‘드라마를 이해하도록 하는 음악’을 만드는 게 그의 뮤지컬 철학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시의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동학농민운동을 이야기한다면서도 10쪽이 넘어갈 때까지 전봉준은 등장하지 않았다. 주인공 하늬와 궁녀 진아의 로맨스를 그리는가 하면, 과거와 현재(1960년대)를 오가기도 했다. “신 시인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어요. 만약 우리가 저렇게 어지러운 세상을 살고 있는 농민이었다면, 만약 나에게 닥친 일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역사극인 만큼 한국적인 요소를 접목해야 할지도 고민거리였다. 그때 영화 ‘밀정’에서 김지운 감독이 라벨의 ‘볼레로’를 쓴 장면을 떠올렸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당시 인기가 있었던 외국 음악을 삽입하면서도 영화의 주제의식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2막에 등장하는 ‘서글픈 우리’라는 곡에는 20세기를 풍미한 블루스의 느낌을 살렸습니다. 그러면서도 휘모리장단과 같은 우리 음악의 장단과 5음계 등 국악 요소를 접목했죠.”

이번 작품을 마친 뒤 그는 내년 1월로 예정된 ‘프랑켄슈타인’의 일본 공연에 슈퍼바이저로 참석한다. 내년 8월 개막할 창작뮤지컬 ‘벤허’도 준비 중이다. 대작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는 요즘, 뮤지컬 ‘록키’가 개막 직전 취소되는 등 뮤지컬계의 잇따른 악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홍수일수록 필요한 것은 ‘깨끗한 물’이라고 하잖아요. 지금 뮤지컬계가 처한 상황도 똑같습니다. 작품은 많지만 깨끗한 물은 많지 않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부터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서 더 많은 작품이 해외에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럽의 시민혁명처럼 동학농민운동이라는 소재도 충분히 해외에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