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싱가포르 총리도 반한 동해 해파랑길 770㎞ 어느 곳을 걸어도 눈부신 바다 "이렇게 아름다운 강산" 탄성이 절로~
해(太陽)와 파란 바다(海), 그리고 파도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 해파랑길(Haeparanggil.org)이 인기다.

해파랑길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국내외 걷기여행 확산에 부응하고 동해안의 새로운 관광콘텐츠 개발을 위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년에 걸쳐 조성한 국내 최장 걷기여행길이다. 부산의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걷기 시작해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10개 구간 50코스 770㎞에 달한다. 해파랑길을 완주하면 부산 울산 경주 포항 영덕 울진 삼척 동해 강릉 양양 속초 고성 등 12개 시·군을 지나게 된다. 해파랑길에서 만나는 해운대, 장사, 칠포, 대진 고래불, 용화, 망상, 경포대, 화진포, 원산의 명사십리 등 동해안의 바닷가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알게 될 것이다.

싱가포르 총리도 반한 길

해파랑길 여행 감상문과 사진을 올린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의 페이스북.
해파랑길 여행 감상문과 사진을 올린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의 페이스북.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는 지난해 12월 한국을 찾아 8박9일간 겨울 휴가를 즐겼다. 강원도 동해안의 걷기 여행길인 해파랑길을 따라 속초 양양 등 관광지와 경주의 문화 유적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리 총리가 페이스북에 올린 여행길 사진과 짧은 감상문에는 ‘좋아요’ 수만 개가 달렸다. 한국관광공사는 최근 ‘총리 발자취를 따라 떠나는 한국 여행’이란 상품을 기획해 싱가포르 현지에서 판매해 지난 26일 관광단 240명이 한국을 찾았다. 1인당 200만원짜리로, 리 총리의 일정과 똑같은 상품이다. 유명 인사의 여행 체험 후기를 적극 활용한 국내 첫 사례다.

윤승환 관광공사 싱가포르 지사장은 “상품을 내놓자마자 모집 인원 160명이 순식간에 다 차 깜짝 놀랐다”며 “2차로 80명을 추가로 모집했다”고 말했다. 관광객의 반응도 뜨거웠다. 길을 걸으며 한국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고 한국 관광에 적극적인 호감을 표시했다.

동해바다의 아름다움 느낄 수 있는 코스

리 총리가 걸었던 코스는 32코스인 추암에서 고성까지다. 이 구간에는 동해바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해변길들이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45코스는 속초의 다양한 명소를 둘러보는 길이다. 속초는 설악산, 청초호·영랑호와 바다, 도심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고장이다. 설악산은 시내와 불과 15㎞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길은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신라 화랑이었던 영랑이 금강산 수련을 다녀오다 경치에 반해 세상사를 잊고 눌러앉았다는 영랑호 호반 산책로(약 8㎞)는 장애인이나 노약자, 어린이, 임산부도 쉽게 걸을 수 있다. 속초시 산불진화센터~영랑호 화랑도 체험관광지~영랑동 주민센터를 거치는 8㎞며 3시간 걸린다.

49코스는 산과 호수, 바다를 모두 걷기 때문에 고성 지역의 지리적·역사적 특성을 두루 느낄 수 있는 코스다. 고성에서 가장 큰 항구인 거진항에서 여행은 시작된다. 몇 걸음만 움직이면 거진등대 해맞이공원을 만나는데 거진항과 가까워 주민들이 새해맞이 장소로 많이 찾는 곳이다. 최근엔 관광객이 점점 늘어나면서 고성을 대표하는 해맞이 명소로 변모하고 있다. 고성 화진포의 빼어난 절경 아래에 권력자들은 별장을 지었다. 대표적인 곳이 지금은 ‘화진포의 성’이라 불리는 김일성 별장과 이승만 별장인데 고성의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화진포에선 작은 항구와 마을을 만나면서 소박함을 엿볼 수 있다.

해파랑길의 백미 영덕 블루로드

리 총리가 걷지는 않았지만 해파랑길에서 가장 이름이 알려진 길이 영덕 블루로드다. 강구, 창포, 노물, 석리, 오매, 차유, 사진, 고래불…. 이름도 예쁜 동해의 어촌을 이어주는 푸른 길이다. 울창한 솔숲과 쪽빛 바다가 눈부시게 펼쳐진 길에는 마을마다 살가운 풍경이 기다린다. 영덕 블루로드는 A~D코스로 나뉘며 총길이 64.6㎞로 21시간이 넘는 대장정이지만 체력과 시간을 고려해 알맞은 코스를 걸으면 된다.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은 B코스(푸른 대게의 길)다. 해맞이공원에서 축산항 영양남씨 발상지까지 ‘환상의 바닷길’로 불리는 구간이다. 15㎞ 내내 옥빛 바다를 곁에 두고 걸으니 블루로드의 백미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영덕 블루로드 B코스의 출발점은 해맞이공원이다. 시작부터 눈이 시릴 만큼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대게의 집게발이 태양을 문 형상이 독특한 창포말등대가 망망한 바다에 섰다.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는 정자까지 이어진 나무 계단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 위를 걷는 착각에 빠진다. 수선화, 패랭이꽃, 해당화, 갯메꽃 등이 계절마다 반겨주는 야생화 탐방로이기도 하다.

풍력발전기 등 독특한 풍광 가득

해맞이공원은 1997년 대형 산불이 난 자리다. 화마로 황폐해진 곳을 자연공원으로 조성해 2003년 해맞이공원이 태어났다. 언덕 위를 올려다보면 커다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이국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A코스에 속하는 영덕풍력발전단지다. 사계절 바람이 많은 이곳에는 풍력발전기 24개가 세워졌다. 높이 80m, 길이 41m에 달하는 날개를 쉴 새 없이 돌리는 동해의 푸른 바람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긴 모래부리라는 뜻이 있는 뱃불마을(경정1리)의 고운 모래 해변을 지나면 차유마을(경정2리)이다. 차유마을은 대게 원조마을로 유명하다. 대게가 서식하기 가장 좋은 장소로, 대게의 맛과 질이 단연 우수한 곳이다. 대게 원조마을 기념비와 마을을 지나 축산항으로 가는 길은 아름드리 해송이 쭉쭉 뻗어 있다. 해송 숲길 옆으로 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바다를 보느라 걸음이 자꾸 느려진다.

해송 숲길 끝에 어느새 B코스 종착지인 죽도산이 보인다. 활처럼 휜 해변을 지나 블루로드다리를 건너고, 나무 계단을 따라 죽도산전망대에 오르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아득하다. 바람에 실려온 듯 꿈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앨범처럼 한 장씩 새겨지기도 한다.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성냥개비만하게 멀어졌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