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이오성 씨가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의 개인전에 출품한 ‘하바나길라’.
한국화가 이오성 씨가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의 개인전에 출품한 ‘하바나길라’.
한국화가 이오성 씨(36)의 회화를 관통하는 모티프는 물이다. 자연이 선사하는 물이든, 성경에 자주 나오는 생명수든 그의 그림에는 물이 선명하게 살아 있다. 그는 구약성서의 십계명을 짜고 또 짜낸 ‘희망과 사랑의 생명수’를 그림으로 응축해낸다. 반석을 뚫고 솟구치는 생명수에는 우리 모두의 잠자던 심령을 흔들어 깨우쳐주는 영력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물이 있는 풍경을 시각언어로 표출하는 이씨가 14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이씨는 서울 도심을 떠나 28년째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왈종 화백의 딸이다. 이화여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한 그는 지금까지 주로 잠들었던 도시가 깨어나는 과정과 흐름에 주목했다면 이번에는 성경 속에 등장하는 다채로운 풍경으로 눈을 돌려 그곳의 물을 캔버스에 옮겼다. 20대 초반부터 기독교에 몰입한 그는 올초 ‘물의 상징적 의미 연구-기독교에서의 생명수를 중심으로’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번 전시회 주제는 ‘우리들의 노래’. 제주와 서울 근교의 물이 있는 풍경과 성경 구절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화면에 되살려낸 근작 20여점을 걸었다.

그의 작품에는 폭포를 비롯해 흐르는 물, 생명수 등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제주 서귀포 정방폭포의 물살은 역동적인 삶을 채근하고, 잔잔하게 흐르는 생명수는 덧없는 인생의 깊이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새가 날고 사람들이 서로 조우하며 즐기는 강변은 삶의 활력을 더해준다. 한국화 고유의 농담과 색채를 표현하면서도 필선과 수묵의 효과를 십분 활용했다. 물이나 사람, 새, 바람에 대한 묘사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서 기운생동의 필력이 돋보인다.

한국화를 전공했지만 기독교 성서 해석에 능통한 그는 “경전은 행간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라며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게 내겐 그림”이라고 말했다. ‘오순절’ ‘약속된 땅’ ‘예배’ 등과 같은 작품 제목이나 소재, 작업 과정에서 기독교의 풍경이 드러난 까닭이다.

제작 기법도 색다르다. 전통 한지에 액체 상태의 아크릴을 바른 뒤 작은 정으로 정교하게 이미지를 새긴다. 성경 텍스트와 자연 풍경이 장전하고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그만의 색채로 화면을 꾸며 완성한다. 그러나 형상에 집착하진 않는다. 형상은 늘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지의 독특한 질감과 파스텔톤의 이미지를 접목한 그림들은 단아하고 깊다.

그는 “그림이란 내게 삶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예술의 본질도 자그마한 씨앗이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삶에 대해 경외심과 신비감을 깨닫는 것”이라고 말했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