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모도 국립공원을 둘러 볼 수 있는 나무로 만든 시모아 선사의 범선.
코모도 국립공원을 둘러 볼 수 있는 나무로 만든 시모아 선사의 범선.
1991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코모도 국립공원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된 명소다.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 서쪽 끝에 자리한 항구도시 라부안바조(Labuan Bajo)가 코모도 국립공원의 관문이다. 발리 덴파사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1시간 정도면 라부안바조에 닿는다. 주변에 80여개의 아름다운 섬들이 있지만 많은 관광객은 코모도 섬(Komodo Island)을 보고자 이곳을 찾는다. “다이버입니까?” 공항에 마중 나온 운전사가 물었다. 방문객 대부분이 ‘다이버(잠수부)’ 아니면 ‘코모도 도마뱀 관광객’이기 때문이다. 방문 목적이 달랐기 때문에 대답을 망설이다 “그냥 유랑객이라고 해두죠”라고 말했다.

크루즈를 타고 2박3일 항해를

코모도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면 가오리과 물고기 만타(쥐가오리)를 볼 수 있다.
코모도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면 가오리과 물고기 만타(쥐가오리)를 볼 수 있다.
라부안바조로 가는 국내선 가격은 20만~30만원 정도다. 현지 물가에 비하면 비싼 편이다. 하지만 작은 비행기는 언제나 만석이다. 일명 코모도 공항으로 불리는 라부안바조는 시골역 같은 소규모 공항이다. 비행기 좌석을 꽉꽉 채운 승객들이 공항에 쏟아져 나오니 금방 시끌벅적해졌다. 기다리던 가이드나 운전사를 만난 이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리 일행도 현지인 운전기사를 만났다. 기사는 이곳에 오는 이들의 목적이 스쿠버다이빙이나 코모도 섬 관광 중 하나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조용했던 시골 마을은 관광객이 늘면서 복잡해지는 모양이었다. “라부안바조에 오래 살았지만 최근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참 낯설어요. 게스트하우스 몇 개만 있었는데 요즘은 호텔, 레스토랑, 외국인이 운영하는 다이빙숍도 많이 생겼으니까요.”

운전기사의 생각과 달리 우리 일행은 ‘크루즈 손님’이다. 크루즈라고 하면 보통 큰 배를 상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의 크루즈들은 인도네시아 전통 배다. 이것을 타고 국립공원 섬 사이사이를 돌며 2박3일간 유람하는 것이 방문 목적이었다. 일행 중 다이버는 없었다. 바다 수영이나 스노클링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이들이다. 아직 바다 밑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다이빙에 푹 빠진 사람들이 들으면 땅을 칠 일이다. 바다 밑 세계의 비밀을 아는 이들에게 코모도 섬은 평생 손꼽아 기다리는 여행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가서 대체 뭘 하고 왔느냐’고 타박할 것이 분명하다.

코모도 다이빙은 거센 조류의 영향으로 역동적인 조류 다이빙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차별점이다. 초보보다는 경험이 있는 다이버들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다이빙 지역이 넓은 곳에 분포돼 있다. 긴 보트여행도 병행해야 한다. 리브어보드(Liveaboad)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도 있다. 리브어보드란 배에서 하루 이상을 보내면서 다이빙도 하고 잠도 자며 여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배 여행의 낭만과 아름다운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어서 인기가 높다. 눈앞에 펼쳐지는 그림 같은 절경을 보며 감탄하다 잠수 중에 쥐가오리까지 만난다면 아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

꿈처럼 아름다운 환상적인 풍경

[여행의 향기] 바다 위 낭만적 하룻밤…코모도는 꿈결 같았다
피니시(Phinish)라는 전통 목선에 올랐다. 시모아(Seamore) 선사에서 운영하는 작은 범선이다. 빨간 돛을 다 펴면 꽤 낭만적으로 보인다. ‘먹고 자는 것’이 배에서 이뤄진다. 일반적인 크루즈와 규모만 다를 뿐 내용이 비슷하다. 코모도 섬 관광과 승선 가이드까지 모두 포함돼 있다. 섬 관광을 개별적으로 할 수 없으므로 지역 전문 가이드와 함께해야 한다.

탑승한 배는 18인승으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방은 특급호텔보단 못하지만 샤워실이 별도로 있고 어떤 방에는 소파도 있다. 객실에서 한 층 더 올라오면 메인갑판과 식당이 있다. 꼭대기 층에 가면 별을 이불 삼아 잠을 청할 수 있는 갑판이 나타난다. 우리 일행은 많은 시간을 갑판 위에 있는 큰 책상에서 보냈다. 공해 없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영화를 보고,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를 나눴다.

인도네시아(코모도 섬)=조은영 무브매거진 편집장 travel.cho@gmail.com/사진=이규열 작가

범선크루즈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
범선크루즈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
첫날은 배에서 내리지 않고 어디론가 항해를 계속했다. 무선인터넷이나 전화도 잘되지 않는 적도의 어딘가였다.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환상적인 풍경들이 눈을 채웠다. 식사 시간이 되면 배는 풍경 좋은 곳에 멈춰 선다. 바다는 잔잔하고 바람은 뺨을 스쳤다. 인도네시아의 빈탕맥주를 꺼내 건배를 했다. 어디선가 주방 직원들이 나타나 새우 칩과 튀김을 놓고 내려간다. 뭔가 규격화된 서비스는 아니지만 그들의 선한 눈 때문에 마음이 놓였다. 음식은 소박하지만 입에 잘 맞았다. 가이드를 제외한 선사 직원들은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빛에서 따뜻함이 느껴져서 편안했다.

파다르섬 전망대서 내려다본 코모도국립공원
파다르섬 전망대서 내려다본 코모도국립공원
이튿날엔 오전 6시에 기상했다. 1시간 정도 섬 하이킹을 했다. 작은 보트로 갈아타고 눈앞에 펼쳐진 파다르 섬(Padar Island)으로 향했다. 모든 직원이 동행해 일행을 잡아주고 끌어주며 가방도 들어준다. 콧노래를 부르고, 웃고, 떠들다 보니 금세 전망대에 올랐다. 파다르 섬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셔터만 눌러도 엽서사진이 된다는 말은 이곳을 두고 한 것이 아닐까. 이럴 때는 사진 한 장이 백 마디 말보다 낫다. 어떤 수식을 더 할 수 있을까.

지구에 존재하는 가장 큰 도마뱀

위협적인 모습의 야생 코모도
위협적인 모습의 야생 코모도
파다르 섬에서 돌아와 아침을 먹은 후 코모도 섬으로 향했다. 화산섬으로 이뤄진 코모도 국립공원(Komodo National Park)에는 약 5700마리의 거대한 코모도 드래곤이 살고 있다. 그 본거지로 꼽히는 곳이 코모도 섬으로 가는 도중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울창한 숲으로 덮인 곳도 있지만 높은 지대로 갈수록 초원이 펼쳐진다. 가이드와 Y자 막대기를 든 레인저들을 동행하고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프리카의 초원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코모도 드래곤은 지구에 존재하는 가장 큰 도마뱀이다. 다 자라면 크기가 2~3m, 몸무게는 90㎏에 이른다. 바다 수영을 500m까지 할 수 있고 시속은 20㎞에 달할 정도로 민첩하다. 침 속에 독이 들어 있어서 한 번 물리면 덩치 큰 하마도 속수무책이다. “코모도 드래곤을 만나도 절대 소리를 지르지 말고, 갑자기 뛰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다.

공격성이 강한 코모도 드래곤은 사람까지 공격하는 경우가 있다. 섬을 돌아보려면 반드시 가이드를 동행하고 레인저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스쿠버다이버들만이 오던 지역이었는데, 최근 관광객이 급증해 연간 2만~3만명이 방문하고 있다.

숨을 죽이고 무리를 지어 유치원 아이들처럼 한 줄로 레인저의 뒤를 따랐다. “지금 짝짓기 시즌이라 놈들이 많이 보이진 않을 거예요”라는 말을 들었지만 운이 좋은 것인지 세 마리나 볼 수 있었다. 해안가로 돌아오니 인간의 손에 자란 코모도 드래곤 네 마리가 있었다. 야생 도마뱀을 보지 못한 관광객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관리소에서 키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느릿느릿 느긋했던 녀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등골 서늘한 코모도 섬 여행을 마쳤다.

해변이 온통 분홍빛을 띤 핑크비치
해변의 모래사장이 핑크색인 핑크 비치
해변의 모래사장이 핑크색인 핑크 비치
다음 여정은 핑크비치(Pink Beach)다. 코모도 섬 동쪽에 있는 특이한 해변으로, 지구에 존재하는 일곱 개의 핑크비치 중 하나가 이곳에 있다. 모래를 집어 들여다보니 빨간색의 무언가가 모래 속에 점점이 섞여 있었다. 산호의 색소를 만드는 미생물이 핑크색을 내는 주인공이다. 멀리서 보면 해변 전체가 분홍색으로 보인다. 핑크비치는 스노클링과 초보 다이버들이 즐기기에 좋은 장소다. 수중 정원에는 수백 종의 산호와 수천 종의 생물이 살고 있고 얕은 물에도 수많은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핑크빛으로 빛나는 곳에서 몇 사람이 스노클링을 하고 몇몇은 나무그늘에 앉아 있었다. 비현실적인 분홍색 해변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작은 언덕에 올랐다. 모래는 부드럽고 햇빛에 이마가 찡그려지는데 왜 그런지 자꾸 웃음이 났다.

핑크비치에서의 여유로운 시간을 마치고, 배로 돌아와 선상에서 마지막 일몰을 즐겼다. 이번 크루즈 여행에서 가장 기억나는 것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적도 하늘의 일몰과 일출, 그리고 컴컴한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무수한 별이었다. 하선하는 날 아침, 3일 동안 정들었던 인도네시아 직원들이 배에서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처음엔 존재조차 몰랐던 이국의 사람들인데 서운해서 가슴 한구석이 아렸다. 적도 한가운데서 만났던 커다란 도마뱀과 따뜻한 미소를 가진 순박한 사람들. 그리고 코모도의 하늘, 섬, 바람이 벌써 그리워진다. 모든 이별은 아쉽기 때문일까.

인도네시아(코모도 섬)=조은영 무브매거진 편집장 travel.cho@gmail.com/사진=이규열 작가

▶여행 Tip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된 인도네시아 코모도 국립공원(komodonationalpark.org)은 유명 관광지인 발리 동쪽에 있다. 인천에서 발리까지 직항을 타고, 발리에서 라부안바조 공항까지 국내선을 타는 것이 코모도 섬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크루즈 프로그램은 시모어 파푸아 선사(seamorepapua.com)에서 운영한다. 2박3일 패키지 가격은 1인당 600달러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