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을 방문하실 땐 꼭 운동화를 신어 주세요' 한 전시의 초대장 마지막에 적힌 문구다. 체육관도, 운동장도 아닌 전시장에 올 때 운동화를 신어 달라는 희안한 부탁이다. 남산공원 바로 앞까지 올라야 겨우 보이는 건물. 그 마당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운동화를 신어 달라'는 부탁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전시장 입구까지 가는 길을 '러닝 트랙'처럼 꾸몄다. '드레스코드가 운동화'인데다 마라톤 트랙을 따라 입장해야 하는 전시의 정체는 서울 회현동 피크닉에서 열리고 있는 '달리기 :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다. '20세기 스포츠 영웅'으로 불리는 에밀 자토펙의 어록에서 따 온 제목처럼, 이 전시는 '인간의 달리기'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았다. 그림, 설치작, 영상부터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작품까지 '러닝'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선보인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관객을 맞이하는 건 작품이 아닌 러닝머신 두 대다. 전시 관계자들이 돌아가며 쉬지 않고 러닝머신 위를 달린다. 한 층 위엔 관객이 직접 러닝머신을 뛸 수 있는 체험형 작품도 놓였다. 서울을 비롯해 모로코, 호주, 핀란드 등 6개 국가의 대표적 러닝 코스를 화면 위로 보며 달릴 수 있다. 편한 신발을 신고 온 관객들만 이 체험을 할 수 있다. 전시 드레스코드가 운동화가 된 이유다.전시장 한켠, 넓은 흰 벽 앞엔 달리는 모습을 한 해골이 걸려 있다. 인체의 뼈마디엔 마치 해부학을 공부하는 학도가 남긴 듯한 설명들이 붙어 있다. 이 달리는 해골의 정체는 이형구의 '호모 푸각스'다. 몸에 대한 집요한 상상과 탐구를 하는 작가 이
지난 13일 이란이 이스라엘에 미사일 수백 발과 드론 공격을 퍼부어 중동지역에 전운이 감돌았다. 10여일 전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공습한 것에 따른 보복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벌어진 전쟁은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지구촌은 이제 동시다발적인 전쟁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이 쓴 <세 개의 전쟁>은 국제정치의 본질을 전쟁이란 렌즈로 파헤친 책이다. 평소엔 모호하거나 은밀하게 감춰진 강대국 정치의 민낯이 전쟁이란 특수 상황에서 투명하게 드러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책이 다루는 전쟁은 세 종류다. 20세기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전쟁,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그리고 긴장관계가 심화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가상의 대만전쟁이다.이들 세 개의 전쟁은 싸움의 주체와 시기, 갈등 원인 등이 달라 얼핏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전쟁의 본질이 모두 같다고 주장한다. 강대국 간 세력권의 충돌이 갈등의 핵심이고, 국제 정치 무대에서 패권 국가로서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사수해야 하는 이익선(利益線)을 위한 다툼이라는 점에서다.태평양전쟁은 아시아의 패권을 쥐기 위한 일본 제국주의가 시발이었다. 일본은 서구 세력의 침탈에 맞서 아시아 민족들의 독립을 지켜내기 위한 ‘대동아전쟁’으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지역 내에서 미국과 영국 등을 몰아내고 패권을 빼앗으려는 것이었다.우크라이나전쟁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소비에트연방 붕괴 후 급속히 추락한 지정학적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라고 강조한다. 우크라이나는 풍부한
영국에서 우리의 국회의원 격인 하원의원은 650명이다. 한국의 300명은 물론 미국의 435명보다 많다. 그런데 본회장에 마련된 좌석엔 대략 427명만 앉을 수 있다. 나머지는 서 있어야 한다.최근 출간된 <여왕은 떠나고 총리는 바뀐다>에 따르면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다. 본회장에 있지 말고 소속 분과회를 가든 지역구를 가든 실질적인 일을 하라는 것이다. 책을 쓴 재영 칼럼니스트 권석하 씨는 “결국 하원의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회의실에 앉아 여야 수뇌부의 토론을 듣고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라고 했다. 권씨는 1982년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영국에 건너가 그대로 눌러앉았다. 영국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쓴 그는 이번 책에선 영국의 정치와 왕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권씨는 의원 수가 많을 때의 장점도 설명한다. “주민들이 의원을 만나는 일부터 어렵지 않다. 거의 모든 의원이 매주 지역구 사무실에서 유권자를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정해진 시간에 의원 사무실에 가서 기다리면 면담할 수 있다.”영국 하원의원은 특권도 거의 없다. 2024년 기준 의원 세비(연봉)는 8만6584파운드(약 1억4100만원)로 한국(1억5500만원)보다 적다. 영국 장관은 개인 전용 관용차가 없다. 필요할 때마다 배차받아야 한다. 영국 총리 관저는 공적 구역과 가족 구역이 나뉘어 있어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총리가 개인적으로 내야 한다. 식재료비, 수도 사용료, 전기 사용료, 지방세 등이다.“부인이 직장인이었던 토니 블레어와 데이비드 캐머런은 일하다가 뛰어 올라가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어 가지고 내려와 먹었다. 아니면 관저 지하실의 직원 식당에서 직원들과 똑같이 5파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