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에 가을이 오면 숲에도 바다에도 낭만이 깃든다. 핀란드관광청  제공
헬싱키에 가을이 오면 숲에도 바다에도 낭만이 깃든다. 핀란드관광청 제공
핀란드의 또 다른 이름은 ‘숲과 호수’라는 뜻의 수오미(Suomi)다. 핀란드는 국토가 한반도의 1.5배 정도인데 10%가 호수고 69%가 숲으로 덮인 나라다. 핀란드 사람들은 주말이면 숲과 공원으로 스며든다. 울창한 숲길을 걷거나, 물가에 앉아 책을 읽거나, 풀밭 위의 식사를 즐기는 등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일상의 피로는 사우나에서 훌훌 날려버린다. 숲과 호수와 사우나가 있는 삶. 이것이 핀란드의 매력이다.

물과 숲의 도시 헬싱키

[여행의 향기] 핀란드에 무지갯빛 물감 풀어 낭만을 찍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의 첫인상은 고요했다. 이따금 자전거 지나는 소리가 정적을 깰 뿐 거리엔 인적이 드물었다. 도심에서 조금만 걸어도 나무가 무성한 공원이 나타났다. 공원에서 이어지는 언덕에 오르니 푸른 바다 위에 유유히 떠 있는 요트가 눈에 들어온다. 해안선을 따라 걷자 카페나 공원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항구 앞 마켓 스퀘어에 이르자 더욱 활기가 넘쳤다. 야생 버섯, 채소, 과일, 생선 등 각종 식료품은 물론 핀란드 전통 음식을 파는 노점이 즐비했다. 핀란드만(灣)에서 돌출한 곶과 작은 섬들로 이뤄진 항구도시 헬싱키는 항구를 중심으로 구시가가 형성돼 있다. 항구에서는 군도행 페리가 오가고, 항구 앞엔 매일 아침부터 전통시장이 선다. 빙어와 비슷한 무이쿠(Muikku) 튀김과 연어 수프는 꼭 맛봐야 할 명물이다. 매운탕처럼 빨간 국물을 기대했다간 하얀 연어 수프 색에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술 더 뜰수록 뼈를 우려낸 육수 맛에 반하게 된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가을날엔 더욱 그렇다.

아름다운 섬 수오멘린나

[여행의 향기] 핀란드에 무지갯빛 물감 풀어 낭만을 찍다
시장 구경도 잠시 수오멘린나(Suomenlinna)행 페리에 올랐다. 항구에서 페리로 15분 거리의 섬, 수오멘린나는 18세기 중엽 스웨덴 점령기에 러시아에 대항해 세운 요새다. 6개의 군도를 연결한 군사 유적지의 규모와 가치를 인정받아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군사 유적지라고 해서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일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스웨덴-러시아 전쟁, 크림 전쟁 등 수많은 전쟁의 무대였던 이 섬은 이제 800명 주민의 삶의 터전이다. 사람들도 주말이면 초목이 무성한 섬의 산책 코스를 걷고, 햇살 좋은 풀밭에 앉아 책을 읽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군데군데 수오멘린나 교회, 요새를 설계한 에렌스베르트 박물관 등 볼거리가 있어 산책이 지루하지 않다. 옛 참호와 대포 사이 잔디밭에는 소풍 나온 가족들이 가득하다. 섬을 한 바퀴 휘 돌아본 뒤, 동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 아담한 목조 카페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햇살 좋은 창가에 앉아 진한 커피에 갓 구운 시나몬 롤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달콤한 온기가 번졌다.

정통 핀란드 사우나에 대한 자부심
야외에서 사우나를 즐기는 핀란드 사람들.
야외에서 사우나를 즐기는 핀란드 사람들.
“사우나가 핀란드어란 걸 아세요?”

귀를 의심했다. 사우나가 핀란드어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 세계에 사우나를 전파한 나라가 핀란드란다. 집집마다 사우나가 있어 사우나에서 몸의 피로와 마음의 근심을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 일상이라는 것. 대통령도 귀한 손님이 오면 여름 별장의 사우나에 초대해 사우나 외교를 펼친다는 말에 입이 쩍 벌어졌다. 옛날엔 사우나에서 아이를 낳을 정도로 신성한 장소로 여겼다고 한다. 그만큼 ‘정통 핀란드 사우나’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정통 핀란드 사우나란 ‘카우하(Kauha·국자)’로 ‘키우아스(Kiuas·사우나 난로)’에 물을 끼얹어 ‘칙’하는 소리가 나는 ‘로욜리(Loyly·사우나 증기)’가 올라오는 증기 사우나인 ‘사부사우나(Savusauna)’를 말한다.

집 밖에도 사우나가 흔하다. 심지어 헬싱키 시내 한가운데 패스트푸드점인 버거킹에도 사우나가 있다. 직접 찾아가 보니 매장 지하 은밀한 곳에 벙커처럼 사우나를 품고 있었다. 매장 매니저는 이용료가 3시간에 250유로지만 사우나 옆에 맥주 냉장고를 갖춘 파티룸이 있어 각종 파티 장소로 예약 문의가 많다고 했다. 사우나를 하다 배가 고프면 1층에서 햄버거를 주문해 먹으면 된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버거킹보다 더 인기몰이 중인 곳은 ‘해변의 사우나 콤플렉스’라는 이색 콘셉트의 ‘로욜리’다. 짙푸른 발트해 옆 메리스타마 공원 끝자락에 지은 2층 건물로, 전체를 나무로 마감해 나무향이 솔솔 난다. 안에는 사우나와 사우나 후 시원하게 한잔하기 좋은 바를 갖췄다. 뜨거운 사우나에서 몸을 풀고,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차가운 맥주, 상상만으로도 상쾌하지 않은가?
바다 옆 사우나 로욜리에는 테라스 바가 있다.
바다 옆 사우나 로욜리에는 테라스 바가 있다.
맛있는 중세도시, 투르쿠

[여행의 향기] 핀란드에 무지갯빛 물감 풀어 낭만을 찍다
헬싱키를 벗어나 강가의 여유와 식도락을 즐기려는 이들이 향하는 곳이 투르쿠(Turku)다. 중세 흔적이 오롯한 핀란드의 옛 수도, 투르쿠가 미식의 도시로 거듭났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아우라(Aura) 강을 따라 노천카페와 선상 레스토랑 등이 즐비하다. 어디서 무얼 먹을까 고민스럽다면 ‘푸드 워크(Food Walk)’ 프로그램이 답이다. 푸드 워크 티켓만 있으면 10개 레스토랑 중 5곳을 택해 정해진 메뉴를 맛볼 수 있다. 그중 아우라 강의 풍경을 즐기며 식사할 수 있는 선상 레스토랑 ‘사바르테 루돌프(Svarte Rudolf)’는 놓쳐서는 안 될 필수코스다. 티켓은 투르쿠관광청 홈페이지에서 미리 구입한 뒤 관광안내소에서 찾거나, 관광안내소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다.

투르쿠 성과 대성당 등 유적을 돌아보면 핀란드의 지난 역사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아우라 강 하구를 지키는 투르쿠 성은 1280년 스웨덴의 핀란드 점령기에 난공불락의 요새로 축조됐다. 왕궁보다는 방어 역할에 충실했던 탓에 화려하진 않지만 내부의 감옥, 연회장, 예배당,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벽화 등이 남아 있다.

고딕 양식 벽돌 건물의 투르쿠 대성당은 1300년에 세워진 루터파 주교회다. 1827년 화재로 훼손돼 18세기에 다시 지어졌다. 내부에는 핀란드 여성으로 처음 스웨덴 왕비가 된 카타리나(Catharina)의 석고상과 무덤도 있다. 워낙 존경받던 인물이라 지금도 그 앞에 늘 생화가 놓여 있다. 대성당은 결혼식 장소로도 인기다. 투르쿠의 명소를 둘러본 후엔 아우라 강 뱃놀이를 즐길 차례다. 전기 보트 ‘라나’를 빌리면 바다까지 쭉 이어지는 아우라 강을 오가며 중세 도시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그렇게 투르쿠의 여유는 아우라 강을 타고 흐른다.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

여행 팁 - 인천공항서 헬싱키까지 매일 직항 운항

[여행의 향기] 핀란드에 무지갯빛 물감 풀어 낭만을 찍다
핀란드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단연 핀에어(Finnair)다. 핀에어가 매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헬싱키 반타공항까지 직항을 운항한다. 소요시간은 약 10시간. 한국보다 6시간 느린 시차 덕에, 오전 11시5분에 비행기를 타면 같은 날 오후 2시15분에 도착한다. 반타공항에서 헬싱키 시내까지도 버스로 약 35분 거리로 가깝다. 헬싱키에서 투르쿠는 헬싱키 중앙역에서 기차로 2시간 걸리니, 당일치기 여행지로도 부담이 없다. 통화는 유로를 쓰며 전압은 220V다. 공용어는 핀란드어와 스웨덴어지만 호텔·레스토랑에선 영어가 잘 통한다. 핀란드 사람들은 수줍음이 많은 국민성 탓에 먼저 말을 걸어오진 않지만 길을 물어보면 친절히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