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학습된 '전쟁 DNA' 의 힘…유럽, 세계를 정복하다
1532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제국에 진입했을 때 맞닥뜨린 병력은 벅찬 상대였다. 피사로의 부하는 167명뿐이었고 잉카 황실 호위대는 5000~6000명 규모였다. 피사로는 기습공격으로 황제를 생포하고 몸값으로 금 6t과 은 13t을 갈취했다. 1536년 잉카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정복자 190명은 10만명이 넘는 잉카군의 포위를 막아냈다.

압도적인 규모의 적군에 맞서 승리를 거둔 정복자는 피사로만이 아니었다. 에르난 코르테스는 중앙아메리카의 맹주였던 아스텍 제국을 정복할 때 904명의 병사들과 함께했다. 1568년 포르투갈인들은 말레이시아 믈라카 요새에서 그들보다 10배 많은 무슬림 상륙부대의 포위를 견뎌냈다. 1570년 유럽인 1100명은 인도인 병사 14만명을 격퇴시키고 인도를 장악해나가기 시작했다.

유럽인은 어떻게 그런 수적 열세를 이겨낼 수 있었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유럽인이 해안에 도착한 뒤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토착민의 떼죽음을 초래한 천연두와 홍역 같은 질병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유럽인은 1800년까지 세계의 35%를 정복하고 1914년께 지구의 84%를 장악했다. 그들이 획득한 영토의 태반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영토였고 이들은 질병에 충분히 면역돼 있었다.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필립 T 호프먼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교수는 《정복의 조건》에서 중세까지 세계 문명의 변방이었던 유럽이 근대 이후 어떻게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됐는지 분석한다. 호프먼 교수는 간결한 대답으로 화약 기술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 기술은 이미 중국이나 중동의 오스만 제국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500년에서 1800년 사이의 근대 초기 유럽 국가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며 총과 대포, 포로 무장한 함선, 포격을 견디는 방어시설 등을 발전시켜 나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화약 기술 을 더 치명적이고 효과적으로 개선시켜 유럽이 다른 지역에 비해 우위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왜 유럽만이 이런 끊임없는 군비 경쟁을 통해 화약기술을 발전시키게 됐는지 탐구한다. 그는 “유럽은 정치적·군사적 조건에서 나머지 세계와 달랐다”며 막대한 보상을 차지하기 위한 군사 경쟁을 스포츠의 ‘토너먼트’에 비유한다. 유럽에선 로마제국이 붕괴한 뒤 중국, 인도, 중동 문명처럼 거대한 패권국가가 등장한 적이 없다. 외침을 막는 데 집중했던 대제국과 달리 유럽은 비슷한 규모의 국가들이 재정적 이득, 영토 팽창, 신앙 수호 등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다.

유럽 통치자들은 엘리트층이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전비 마련을 위한 증세법을 차차 알아냈다. 더 많은 인력과 장비를 전쟁에 동원하면서도 정치적 문제에 부딪히지 않는 학습을 끊임없이 이뤄냈다는 것이다.

유럽이 다른 문명의 제국과 달랐던 또 다른 점은 민간의 진취성을 이용해 정복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중세 기사들은 유럽 너머까지 출격해 토지를 획득하고 신앙의 적을 격퇴했다. 근대 해외 원정으로 금은보화를 획득했단 소식이 민간의 무역과 정복 같은 모험사업을 부추겼다. 화약 기술로 무장한 군과 민간의 합작 원정이 정복을 위한 정치 경제적 발전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