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의 하나로 설립된 서울 상암동 문화창조융합센터. 연합뉴스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의 하나로 설립된 서울 상암동 문화창조융합센터. 연합뉴스
‘최순실 씨 국정 개입 파문’으로 초유의 위기에 직면한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직 추스르기에 나섰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31일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겠다”며 “모든 의혹을 털어내고 투명한 문체부로 재출발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 안팎의 ‘비선 실세’ 관련자도 정리되는 양상이다. 지난 30일엔 김종 2차관이, 이날은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연이어 사퇴했다.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던 차은택 씨(전 창조경제추진단장)와 김종덕 전 장관 등 문체부와 관련한 4명의 국정 개입 핵심인물들이 모두 물러난 셈. 최씨와 그 측근들의 국정 개입 ‘온상’으로 지목된 문체부가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주목된다.

◆전문성·기준 없는 인사·사업이 문제

의혹 관련 사업 과감히 정리…문화창조융합벨트 '대수술'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문체부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문화융성’을 국정 기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에 맞춰 문체부의 몸집도 빠른 속도로 커졌다. 기존의 4개 실(室)은 7개 실로 늘어났다. 기획재정부, 교육부에 3개 실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2018년 문화 재정 2% 달성’을 목표로 내걸면서 예산도 크게 늘어났다. 특히 최씨와 차씨가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콘텐츠 부문 예산은 2013년 4769억원에서 올해 7492억원으로 4년 새 57.1%나 늘었다. 같은 기간 정부 총예산 증가율(12.9%)의 4배가 넘는다.

하지만 이 사이 문체부 내부에선 ‘쉬쉬’ 하는 분위기와 함께 차씨가 주도하는 인사 초토화가 진행됐다. 문체부 출신 첫 수장이던 유진룡 장관이 2014년 7월 후임자도 없이 갑작스럽게 경질됐다. 바로 다음달 차씨의 홍익대 영상대학원 은사인 김종덕 장관이 취임했다. 박민권 전 문체부 제1차관은 “차씨에 대해선 ‘비선 실세다. 큰 줄을 잡고 있는 것 같다’는 소문이 내부에도 있었다”고 전했다.

장관만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이례적으로 두 명의 차관 모두 비관료 출신으로 구성됐다. 2013년 10월 취임한 김종 2차관은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출신이고, 지난 2월 임명된 정관주 1차관은 변호사 출신이다. 한 문체부 전직 간부는 “내부 출신인 박민권, 김희범 1차관이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경질되고 장·차관 모두 외부에서 들어와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며 “문체부에서 하는 일이 겉으로 생색내기 좋아서 정치인 등 많은 사람이 탐내는 데다 인사에 특별한 기준도 없다 보니 전문성 없는 이들로만 채워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업의 특성상 돈의 흐름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것도 외부 세력에 휘둘리게 된 원인으로 꼽힌다. 다른 부처의 사업과 달리 ‘한식의 세계화’ ‘한류 확산’ 등 문체부의 사업은 무형적 성격이 강하다. 한번 예산을 쓰고 나면 그 결과를 딱 떨어지는 지표로 확인하기 어렵다. 사업 선정 기준도 모호해 실세의 말 한마디에 쉽게 바뀔 수도 있다. 2년간 2억원을 들인 ‘코리아체조’가 한순간에 버려지고 차씨가 주도한 ‘늘품체조’로 바뀐 것도 이 같은 까닭에서다.

◆“주먹구구식 사업 재정비”

조직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안팎의 따가운 시선에 이중고를 겪고 있는 문체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주먹구구식 사업과 인사를 재정비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차씨가 기획하고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을 면밀히 재점검할 계획이다. 여야 정치권도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에 필요한 내년 예산 1200억원 전액을 삭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부터 기존 사업과의 중복성 문제도 꾸준히 제기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 대해선 이미 담당 국에서 조사하고 있고, 중복되는 사업은 정리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외부로부터 문제를 지적받은 모든 사업에 대해 다시 확인하고 조만간 문화, 예술, 체육, 관광 부문별로 정비하는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사태의 단초가 된 인사, 계약에 관한 기준도 새로 정할 방침이다. 이 관계자는 “각 실·국과 산하기관별로 인사와 계약 때 어떤 기준으로 할 것인지 포맷을 만들고 있다”며 “외부에서 사람이 오더라도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으로 영입할 수 있도록 기준을 가급적 빨리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