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편안해서인지 감독들이 많이 찾아요"
“제가 출연한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무대에서 상영되는 걸 보니 기분이 묘하면서도 뭉클했어요. 부산영화제가 마주한 중요한 시점에서 영화를 선보여 의미가 더 컸습니다. 부산시와의 갈등으로 부산영화제는 한층 성숙해진 것 같아요.”

신예 스타 한예리(32·사진)는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주연을 맡은 ‘춘몽’이 상영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조선족 출신 장률 감독의 열 번째 영화인 ‘춘몽’은 별 볼 일 없는 세 남자 익준, 정범, 종빈과 그들이 여신(?)처럼 모시는 예리가 함께 꿈꾸며 사는 세상을 그린 작품이다. 세 남자 역을 해낸 배우는 실제 감독들이다. ‘똥파리’의 양익준, ‘무산일기’의 박정범, ‘범죄와의 전쟁’의 윤종빈 감독이다. 여기에 한예리까지 네 명의 주인공이 모두 실명으로 등장한 게 이채롭다.

“‘최악의 하루’가 인간관계에 관한 작품이라면 ‘춘몽’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얘기하는 영화예요.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부족하지만 아름답다는 거죠. 구태여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강하지는 않습니다.”

극 중 철길을 경계로 둔 수색과 상암에는 건물 모습처럼 사는 사람도 전혀 다르다. 고층빌딩이 많은 상암에는 준비된 표정의 사람들이 오가지만, 낡은 단층집이 많은 수색에는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산다. 그들은 한심한 백수 같지만 서로의 약점을 감싸주는 따스함이 있다.

“세 분은 전문 배우가 아닌데도 연기를 잘했어요. 저는 명색이 배우인데 그분들한테 연기가 못 미치면 어떡하나 고민이 컸습니다. 세 분은 늘 연기에 대해 미리 준비해왔고, 제게도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그는 장 감독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호기심에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했다. 장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지점으로 배우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편이라 촬영하기에 편했다고 한다. 중국 옌볜 출신인 장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한예리는 내 고향을 닮은 배우처럼 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저야 영광이죠, 한 사람에게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선다니 말이죠. 배우로선 행운입니다. 굳이 제 매력을 꼽으라면 친숙함과 편안함일 거예요. 누군가에게 애정을 가지려면 자꾸 봐도 질리지 않아야 하잖아요. 옆집 사람 같아야 마음이 가는 거죠. 제게는 그런 부분이 있어 불편함이 덜 느껴지는 걸 겁니다.”

한예리는 감독들이 많이 찾는 여배우다. 이번 부산영화제만 해도 그의 출연작 중 ‘춘몽’ 외에 ‘더 테이블’이 초대됐다. ‘최악의 하루’는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올해 들어 방송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와 ‘청춘시대’에도 출연했다.

“무예 고수 척사광을 연기한 ‘육룡이 나르샤’가 방영된 뒤 아저씨 팬이 늘었어요. 드라마는 실시간으로 시청자와 만나니까 피드백(반응)이 빨랐어요. 신중하게 선택해야겠더라고요.”

배우로서 그의 목표는 뭘까. 그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며 “기자들이 꼽는 ‘좋은 배우 톱10’에 꼭 들고 싶다”고 했다.

부산=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