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피렌체 대성당…거대한 르네상스와 마주하다
이탈리아 남쪽 토스카나의 주도인 피렌체는 이름만 들어도 꽃향기가 나는 듯하다. 피렌체는 유럽 문명을 주도하는 르네상스의 발상지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과 같은 천재적인 예술가들을 배출한 예술의 땅이다. 그뿐인가. 이탈리아어로는 피렌체, 영어로는 플로렌스라 불리는 이 도시는 ‘꽃 피는 마을’이라는 의미의 플로렌티아에서 기원했다.

피렌체 여행의 시작,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꽃의 도시에 왔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피렌체의 꽃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을 찾는 일이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는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피렌체 두오모’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두오모는 라틴어로 돔이라는 뜻이지만 현재는 대성당을 이르는 말로 통용된다. 성당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도시가 그리 크지 않아 어디든 걸어갈 수 있는 데다 여행객의 십중팔구는 두오모로 향하기 때문이다. 명품숍들과 가죽상점으로 빼곡한 거리에서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 붉은 빛의 거대한 돔, 쿠폴라(Cupola)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피렌체 대성당 모습은 예술품 그 자체다. 본당과 더불어 산 조반니 세례당, 조토의 종탑으로 이뤄져 있는데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답게 거대하다. 흰색, 녹색, 그리고 붉은색의 대리석과 기하학적 문양으로 치장된 외벽은 현기증이 날 만큼 화려하다. 왜 르네상스의 걸작이라고 평가받는지 단번에 이해가 간다.

르네상스의 영광을 한눈에

그러나 피렌체 두오모가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자리에는 본래 산타 레파레타 성당이 있었다. 그러나 너무 오래된 나머지 붕괴 직전에 이르렀고, 급증하는 피렌체 인구와 권력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규모였다.

이런 이유로 피렌체는 기존 성당을 헐고 명성에 걸맞은 규모의 성당과 종탑을 짓기로 했다. 새로운 성당은 르네상스가 태동하기 전인 1292년, 아르놀로 디 캄비오에 의해 고딕양식으로 설계됐다. 공사는 장장 170년에 걸쳐 이뤄졌는데, 성당이 거의 완성될 때쯤 르네상스 건축의 창시자인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쿠폴라를 얹음으로써 비로소 지금의 두오모가 완성됐다. 피렌체 두오모는 완성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현재도 석재 돔을 가진 건축물 중에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건축은 권력과 욕망을 투영한다고 했던가. 당시 이탈리아 내 피렌체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가 조금은 짐작이 간다.
피렌체 대성당의 아름다움은 내려다볼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쿠폴라를 오르는 것도 좋지만, 예배당 오른쪽에 있는 조토의 종탑에도 올라보기를 추천한다. 85m 높이를 자랑하는 이 탑은 설계를 맡은 건축가 조토의 이름을 본떠 명명됐다.

피렌체의 정치적 상징, 팔라초 베키오

피렌체 대성당을 뒤로하고 피렌체 정치행정의 중심인 시뇨리아 광장으로 향했다. 르네상스 조각품들의 향연에 마치 야외 박물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베키오 궁전이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피렌체 지도자들의 회의 장소로 건립됐으나 메디치 가문이 지배하던 시절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 모습이 완성됐다.

피렌체 공화국 시절에는 청사 역할을 담당했으며 지금도 시청사로 쓰이고 있다. 베키오 궁전에는 두오모의 쿠폴라, 조토의 종탑과 더불어 피렌체에서 가장 높은 탑이 서 있다. 지금은 시계탑이지만 과거에는 망루 역할도 했다. 사실 중세시대 피렌체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시국가로 이뤄진 토스카나는 언제나 긴장 상태였다. 사방에 깔린 주변 도시들이 언제 어디서 쳐들어올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시에나의 진주를 찾는 방법, 만자의 탑

피렌체를 떠나 향한 곳은 토스카나의 진주라고 불리는 시에나다. 피렌체에서 남쪽으로 50㎞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이 도시는 유럽에서도 중세 분위기를 가장 잘 간직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시에나는 구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다. 즉, 도시 전체가 볼거리다. 320m 구릉에 있어 오르막과 내리막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유난히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엔 적갈색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세월 속에 멈춰 서 있다. 피렌체와는 다른 차분함과 고풍스러움이 느껴진다.

구시가의 중심거리인 치타 거리(Via di Citta)를 걷다 비탈길로 빠지면 생각지 못한 광활한 공간이 펼쳐진다. 시에나의 심장과도 같은 캄포 광장이다. 광장 정면에는 14세기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푸블리코 궁전이 있는데 현재는 시청사와 시립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궁전 위로는 광장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건축물이 솟아 있다. 바로 만자의 탑이다. 붉은 벽돌과 하얀 석회암으로 이뤄진 이 탑은 시에나가 자치권을 획득한 것을 기념해 1348년 완공됐다. 만자의 탑 높이는 102m로 중세 이탈리아에서 건설된 탑 중 세 번째로 높다.

시에나의 진주는 만자의 탑에 오르는 자만이 찾을 수 있다. 정상에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다. 사람이 하나 겨우 들어가는 500여개의 좁다란 계단을 쉼 없이 올라야 한다. 그러나 마지막 계단을 통과하고 발 아래 펼쳐지는 광경을 보는 순간 그간의 고생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부채꼴 모양의 광장은 바깥에서 안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그 모습이 조개 모양을 연상케 한다. 지금도 캄포 광장은 낮이건 밤이건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조개를 빼닮은 캄포 광장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을 진주처럼 품으며 세월을 함께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완성이 만든 완성, 시에나 대성당

지금의 시에나는 한적한 소도시 모습이지만 한때는 피렌체와 견줄 만큼 강력한 도시였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피렌체를 이기지 못한 비운의 도시이기도 했다. 시에나에서 가장 높은 언덕으로 향하면 그곳에는 산타마리아 아순타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 즉 시에나 두오모가 있다. 시에나 두오모는 고딕양식에 토스카나 건축양식을 아름답게 녹여낸 것으로 유명하다. 화려한 조각들로 꾸며진 파사드, 하얀색과 녹색이 감도는 검은색의 줄무늬 패턴으로 장식된 외관은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그러나 시에나 두오모의 절정은 내부에 있다. 피렌체 두오모 내부는 비교적 단순한 데 반해 시에나의 것은 안과 밖 모두가 화려하다. 본당에 발을 디디는 순간 감도는 오묘한 분위기에 중세 기사단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흑백 줄무늬 패턴을 따른 내부 기둥, 17개의 콘트라다를 상징하는 휘장, 벽면과 천장을 가득 덮은 프레스코화, 바닥의 모자이크, 금으로 치장된 돔과 채광창까지 보는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두오모 광장 오른쪽으로 가면 거대한 벽체가 미완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때 시에나는 피렌체 두오모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성당을 꿈꾸며 확장 공사를 했다. 그러나 1348년 창궐한 페스트 여파로 중단됐고 재개되지 못했다. 그러니까 시에나 두오모는 미완성인 셈이다.

토스카나=글·사진 고아라 여행작가 minstok@naver.com

여행팁

시에나 대성당 전경. 13세기에 지어졌으며 고딕양식과 토스카나의 특성을 훌륭하게 살린 걸작으로 꼽힌다.
시에나 대성당 전경. 13세기에 지어졌으며 고딕양식과 토스카나의 특성을 훌륭하게 살린 걸작으로 꼽힌다.
서울에서 피렌체로 가는 직항 비행기가 있다. 피렌체에서 시에나까지는 기차보다는 급행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약 90분 걸린다. 대부분의 대성당과 종탑은 입장료가 있다. 개별권과 통합권이 있으니 목적에 맞게 구입하도록 하자. 탑은 날씨에 따라 입장 제한이 있을 수 있다. 올라갈 계획이라면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매년 7~8월에는 토스카나 최고의 축제인 팔리오가 시에나 캄포 광장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