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명 실종, 5만2천가구 정전, 침몰ㆍ전복 등 선박사고 15건
하천 복개지 차량들 휩쓸리고 주택ㆍ펜션 등 침수 잇따라


태풍 '차바'가 제주도를 강타해 정전과 단수, 넙치 폐사, 실종, 선박 전복, 시설물 파손 등 갖가지 피해가 속출했다.

5일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제주가 태풍 영향권에 접어든 4일 오후부터 5일 낮 현재까지 한라산 윗세오름 659.5㎜, 삼각봉 549.5㎜, 사제비 540.5㎜, 어리목 536.5㎜ 등 산간에 많은 비가 내렸다.

산간 외 지역도 수백㎜의 비가 쏟아졌다.

4일 오후부터 5일 오전까지 제주(북부) 175.1㎜, 서귀포(남부) 289.1㎜, 성산(동부) 141.7㎜, 고산(서부) 26.6㎜, 용강 400㎜, 아라 371.5㎜, 유수암 344.5㎜ 등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한라산 윗세오름에 한때 시간당 최고 170㎜가 넘는 '물 폭탄'이 쏟아진 것을 비롯해 산간 모든 지역과 서귀포, 아라, 용강 등 일부 지역에서도 시간당 강수량이 최고 100㎜를 훌쩍 넘었다.

서귀포에는 5일 하루 267.7㎜의 비가 내려 관측 이래 10월 기록으로는 1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바람도 거세게 몰아쳐 최대순간풍속이 고산 초속 56.5m, 제주 47m, 성산 30.4m, 서귀포 22.2m 등을 기록했다.

제주에서 관측된 초속 47m의 최대순간풍속은 태풍 '매미'가 내습했던 2003년 9월 12일 기록된 초속 60m에 이어 2번째 기록이다.

고산에서 관측된 초속 56.5m의 최대순간풍속 역시 2003년 9월 12일(초속 60m), 2002년 8월 31일(초속 56.7m)에 이어 3번째 기록이다.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며 갖가지 피해가 속출했다.

한국전력 제주지역본부에 따르면 제주가 태풍 영향권에 접어든 4일 밤부터 5일 오전까지 제주 곳곳에서 정전이 발생했다.

5일 오후 1시 현재 정전된 가구는 총 5만2천413가구다.

이 가운데 4만7천여 가구는 복구가 완료됐고 5천300여 가구는 현재 복구작업이 진행 중이다.

한전 관계자는 "제주시 용담동, 서귀포시 토평동 등 일부 지역에 한 10% 정도 복구가 아직 되지 않았는데 오늘 안에는 작업을 마무리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전역에서 발생한 정전으로 양식장 넙치 폐사가 속출했다.

서귀포시 표선면 C수산은 넙치와 돌돔 47만 마리가 정전으로 폐사했다고 제주도에 신고했다.

대정읍의 S영어조합법인 양식장에서도 정전이 발생해 넙치 2만여 마리가 폐사했으며, 비닐하우스도 강풍에 파손됐다.

이 밖에도 정전으로 인한 넙치 폐사 신고가 속출하고 있으며 제주도는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해 복구비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서귀포시 성산읍, 대정읍, 표선면, 남원읍 해안 지역에서는 양식장이 정전돼 자가발전기를 투입하는 등 응급조치를 했다.

도내 16개 정수장 중 오라정수장을 제외한 15개 정수장도 정전을 피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일부 지역에 물이 공급되지 않아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으며, 제주도 상하수도본부는 전력이 복구되는 대로 정수장을 재가동해 물 공급을 재개했다.

정전으로 인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성산일출봉, 비자림, 만장굴에서는 매표 업무가 한때 중단됐다.

폭우가 쏟아지며 제주시 한천이 넘치고 한천교 일대에서 물이 역류, 세워둔 차량 수십대가 휩쓸려 뒤엉키며 피해가 발생했다.

행정당국과 경찰은 한때 이 일대 통행을 통제했으며 범람 위기를 알리는 경보방송을 하기도 했다.

제주시 산지천도 만수위에 다다라 범람 직전의 위기 상황에 산지천 하류 남수각 일대에서는 민방위 경보 사이렌과 안내방송으로 주민 대피경보를 내리기도 했다.

제주시 외도동 월대천도 범람해 주변 가정집과 펜션 등 10여 채가 침수, 주민과 관광객 등 50여명이 주민센터나 친인척 집으로 대피했다.

해상에서도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이날 오전 7시 6분께 제주항 제2부두에서는 한 남성이 선박과 선박 사이를 건너다가 해상에 추락한 뒤 행방을 알 수 없다는 신고가 들어와 해경 등이 실종자를 찾고 있으나 실종자가 없는 오인신고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 주변 선박 선원들이 이를 발견해 구명부이를 던져 구조하려고 했지만 구조하지 못했다며 해경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제주해경은 수색을 벌이고 있다.

5일 0시 40분께 서귀포시 하예포구에서는 정박 중이던 서귀포 선적 유자망어선 C호(5.7t)가 전복됐다.

다행히 해양오염이나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며, 오전 1시 30분께 선박 고정 작업을 마쳤다.

오전 6시 20분께 서귀포시 화순항에서는 어선 H호(3.5t)가 전복됐고, 제주시 애월항에서는 정박해 있던 요트 P호(19t)가 침몰했다.

도두항에서는 레저보트 A호(8t) 등 4척이 침몰했다.

이날 정오 현재까지 제주해경본부가 집계한 사고는 총 16건(침몰 8척, 전복 3척, 침수 2척, 좌초 2척, 실종 1명)이다.

농작물 피해도 다수 발생했다.

비닐하우스가 강한 비바람에 주저앉거나 부서지면서 감귤 등 하우스 내 작물에 피해가 발생했고, 수확이 한창이던 노지 감귤도 상당한 피해를 봤다.

성산읍 삼달리 월동무 밭과 제주시 구좌읍 당근밭 등에서는 침수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시설물 피해도 속출했다.

저수용량 9만t 규모의 제주시 오등동 병문천 제3저류지 석축 일부가 폭우로 붕괴하면서 갇혔던 빗물이 한꺼번에 흘러내렸고, 터져 나온 하천수가 인근 조경농원을 덮쳐 수억 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손해를 본 조경업체 측에서는 "비가 많이 오기도 했지만, 부실하게 쌓은 석축 때문에 생긴 예고된 사고였다"며 부실하게 이뤄진 저류지 공사가 문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오전 6시 56분께는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국가풍력실증연구단지에 있는 2기의 풍력발전기 중 1기의 날개가 부러지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 풍력발전기는 효성이 세운 5㎿급으로 날개 길이가 50m가 넘는다.

오전 4시께 제주시 노형동의 한 공사장에서는 타워크레인이 강풍에 인근 빌라로 쓰러져 주민 6가구 8명이 주민센터로 대피하는 일도 있었다.

이 밖에도 가로수가 넘어지거나 교통신호등이 꺾어지는 등 시설물 피해가 잇따라 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수백건의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제주도는 주요 피해 지역에 대해 현장 조사하고 읍면동별로 세부적인 피해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조사가 끝나는 대로 보상계획 등을 수립할 예정이다.

재난안전대책본부 관계자는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반드시 10일 이내에 읍면동에 피해 신고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도내 학교와 교육기관도 강한 비바람에 많은 피해를 봤다.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초등학교 64개교, 중학교 26개교, 고등학교 20개교, 특수학교 3개교 등 113개교와 기관 8곳 등 총 121곳에서 시설물 파손 등 태풍 피해가 발생했다.

대부분 출입문이나 외부 전광판, 교정 내 야자수, 물탱크, 지붕, 울타리, 벽체, 통학버스 등 학교 시설이 일부 파손되거나 건물이 침수되는 등의 피해였다.

문화재 피해도 많았다.

중요민속문화재 제188호인 성읍민속마을에서는 초가 16채의 지붕이 일부 훼손됐고 천연기념물인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성읍리 느티나무 및 팽나무군, 도순리 녹나무 자생지, 납읍리 난대림, 상효동 한란 자생지에서는 나무가 쓰러지고 탐방로가 파손됐다.

태풍 차바는 5일 오후 3시 현재 중심기압 980헥토파스칼(hPa), 중심 부근 최대풍속 초속 29m에 강도는 중, 크기는 소형이며 울산 동북동쪽 약 160㎞ 해상에서 시속 57㎞ 속도로 동북동진하고 있다.

차바는 12시간 이내에 온대저기압으로 변질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는 이날 오전부터 점차 태풍 영향권에서 벗어나 평온을 되찾았으며, 육상과 해상에 내려졌던 기상특보도 모두 해제됐다.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변지철 전지혜 기자 atoz@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