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모녀가 경험한 4박5일 한국 저가 관광상품

중국 국경절(1~7일) 연휴를 맞아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중국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유커들이 선호하는 해외 여행지 1위는 한국이다. 이번 연휴에만 25만여명이 한국을 찾을 것이란 전망이다. 3일까지 서울 주요 관광지는 물론 근처 식당가는 유커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렇다면 한국 관광을 마치고 돌아가는 유커들의 만족도는 과연 어떨까. 한국경제신문은 중국인의 방한 패키지 여행상품 실태를 알기 위해 중국인 모녀 왕옌(46·가명)과 한메이(21·가명) 씨를 ‘미스터리 쇼퍼’로 한국 관광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들은 현지 온라인 여행사를 통해 ‘서울 둘러보기 5일’ 상품을 1인당 2717위안(약 47만원)에 샀다. 중국 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는 비교적 괜찮은 상품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같은 항공사의 왕복 비행기 요금(약 54만원)에 못 미치는 싼값이었다. 한메이 씨의 시각을 중심으로 방한 패키지 여행상품 실태를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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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코리아! 이대론 안된다] 5일간 관광 370분·쇼핑 805분…"다시 한국에 오고 싶지 않아요"
찜질방 쪽잠으로 시작한 서울 관광

9월24일 새벽 4시30분. 중국 후난성 창사(長沙)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절차를 밟으며 한국 사람들을 보니 한국 관광에 대한 설렘이 물씬 몰려왔다. 앞으로 5일을 함께할 한국인 가이드가 반갑게 열댓 명의 일행을 맞이했다.

버스를 타고 간 곳은 서울 강서구 공항동의 한 숯가마 찜질방. “한국 사람들이 피로회복을 위해 자주 이용하는 곳”이라는 가이드 설명이 곁들여졌다. ‘좀 쉴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은 이내 깨졌다.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계속 들어오는 통에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었다.

비몽사몽. 그러는 사이 찜질방에서 주어졌던 2시간30분이 금방 지나갔다. 결국 수면이 모자란 채 서울 여행을 시작했다. 하루 동안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 앞길에 있는 청와대 사랑채부터 경복궁, 남산한옥마을, N서울타워를 둘러보고 ‘난타’ 공연을 봤다. 나름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채울 기회였지만, 빡빡한 일정 탓에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이동했다. 중국을 출발한 지 16시간 만이었다. 구로구 오류동에 있는 호텔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나 피곤한 탓에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하루 일정 중 관광은 달랑 90분

“마이 마이 마이(買買買: 사세요, 사세요, 사세요)!”

방한 이튿날인 9월25일. 가는 곳마다 물건을 사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날 쇼핑 시간은 무려 405분(6시간45분). 인삼, 호간보(헛개나무 열매를 이용한 건강보조식품), 화장품을 비롯해 면세점 등 총 6곳을 돌았다. 쇼핑을 제외한 관광이라곤 롯데월드 어드벤처에서 90분을 보낸 것이 전부였다. 쇼핑 시간이 관광 시간의 네 배가 훨씬 넘는 ‘쇼핑지옥’의 날이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경기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에 있는 한 인삼판매점. 버스에서 가이드는 “북한 여자가 예쁜 이유는 인삼을 많이 먹기 때문”이라며 인삼 효능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용어를 설명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도착하니 다른 중국 단체 관광객이 많아서 줄을 서야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매장 직원들은 돌아가며 인삼을 어떻게 키우는지, 1~6년산 인삼의 생김새가 어떻게 다른지, 어떤 효능이 있는지를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나니 사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문제는 가격. 인삼 농축액(600g)은 510달러(56만원), 인삼 20개들이 상품은 438달러(48만원), 60개들이 상품은 1585달러(174만원)였다. 처음에는 중국 위안화로 표시된 줄 알았으나 단위가 달러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올해 4월 기준 베이징 노동자의 월 최저임금이 1670위안(약 27만4000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비쌌다. 일행은 대부분 20~30대 젊은 층으로 구매력이 높지 않아 보였다.

결국 인삼판매점에서는 ‘아무도’ 물건을 사지 않았다. 잠시 후 다음 매장으로 이동했다. 버스에 탔을 때 가이드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말수도 줄었다. 누가 봐도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이드는 “여러분이 패키지 상품으로 낸 비용은 그저 비행기표 값일 뿐”이라며 “판매점들의 협찬 덕분에 숙식비와 교통비 부담 없이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안 사다니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바가지에 또 바가지

두 번째 들른 곳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호간보 매장. 이곳 역시 비싸긴 마찬가지였다. 240알짜리 상품이 55만원이었다. 60알을 서비스로 준다고 했지만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480알은 108만원, 960알은 214만원, 1200알은 275만원이었다. 어머니는 “타이구이러(太貴了: 너무 비싸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가이드의 으름장이 통했는지, 술 마시는 사람에게 좋다는 설명 때문이었는지 관광객 6명이 총 130만원어치를 샀다. 다음 코스로 이동하는 가이드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세 번째 쇼핑매장은 마포구 노고산동에 있는 화장품 판매점이었다. 중국에서 한국 화장품은 인기 만점. 그러나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변했다. 매장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제품들로 가득했다. 아는 브랜드가 거의 없어서 물어보니 “한국 사람만 살 수 있는 특별한 제품이라 면세점에서는 팔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부넝샹신(不能相信: 믿을 수 없다)”이란 말이 들렸다. 포장 박스는 한눈에도 조악해 보였다.

아는 브랜드가 있긴 했으나 재고 상품인지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봐도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평소에 즐겨 쓰던 C사 립스틱이 있어서 봤더니 1만6000원이었다. 예전에 6000원에 산 제품을 거의 세 배 가격에 팔고 있었다. 같은 브랜드의 아이섀도는 5만원이었는데, 중국에서 165위안(약 2만7300원)이면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직원들이 제지했다. 나중에는 휴대폰을 든 손을 움직이기만 해도 주시했다.

“쇼핑 강행군에 심신이 지쳤어요”

쇼핑 매장 세 곳을 돌고 나니 파김치가 돼 버렸다. “옌판러(厭煩了: 너무 지겹다)”나 “타이레이러(太累了: 너무 피곤하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하지만 예정된 6개 쇼핑 코스 중 이제 세 개만 돌았을 뿐이다. 네 번째 쇼핑점은 용산에 있는 신라 아이파크 면세점이었다.

가이드는 “온라인 면세점에서 살 수도 있지만 오프라인 매장 상품의 품질이 훨씬 더 좋다”며 “온라인이 싸더라도 상품이 다르니까 여기서 많이 사라”고 권했다. 꺼림칙했지만 프랑스 브랜드의 스킨 제품을 4개 샀다.

점심을 먹고 난 뒤 간 곳은 중구 장충동에 있는 신라면세점 본점. 다른 면세점과 달리 이곳에서 두 시간 넘게 머물렀다. 아마 신라면세점이 협찬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오래 머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사고 싶은 것을 산 뒤였다. 비슷한 상품들로 가득해서 더 살 만한 것이 없었다. 여섯 번째 쇼핑점은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롯데면세점 코엑스점이었다. 가이드는 특별한 제품 홍보를 하지 않았다.

관광하는 시간보다 쇼핑하는 시간이 더 많은 하루. 심신이 피곤했다. 하루 온종일 쇼핑만 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인에게도 유명한 롯데월드 어드벤처 관람이 끼어 있었다. 기대를 잔뜩 안고 입장했지만 주어진 시간은 겨우 90분에 불과했다. 그저 어떻게 생겼는지만 주마간산식으로 훑어볼 뿐, 놀이기구 하나 제대로 탈 수 없는 시간이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 의자에 축 늘어진 어머니는 “부샹짜이라이한궈러(不想再來韓國了: 다시 한국에 오고 싶지 않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서울의 참모습 보지 못해 아쉬워요”

이날 이후에도 쇼핑 관광은 계속됐다. 중국 출발 전에 현지 여행사는 4박5일 기간 중 면세점 네 곳, 일반 쇼핑매장 네 곳을 간다고 했다. 하지만 5일 일정 중 실제로 간 쇼핑매장은 11군데(면세점 여섯 곳, 일반 쇼핑매장 다섯 곳)에 달했다. 전체 일정 중 순수 관광시간은 총 370분이었지만, 쇼핑시간은 두 배가 넘는 총 805분이었다.

한국 여행의 즐거움은 한국에 온 지 4일 만인 자유시간에야 잠깐 느낄 수 있었다. 귀국 비행기에 오른 28일. 만족감보다는 서울의 참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더 크게 밀려왔다. 비행기 창밖 너머로 ‘쇼핑지옥’ 한국이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김명상 기자 t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