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풍경] 최영림 '낙원'
‘토속과 해학의 작가’로 불리는 최영림 화백(1916~1985)은 해방 이후 국내 화단에 목가적 서정주의를 표방한 새로운 화풍을 개척했다.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전통적인 설화를 비롯해 고대소설, 민담을 바탕으로 화면에 ‘이야기’를 담아냈는가 하면 벌거벗은 여성 이미지를 소재로 에로틱한 미감을 은은하게 살려냈다. 캔버스, 도마, 신문지, 모시 천 등 다양한 재료 위에 모래와 유화물감으로 자신의 영감을 펼쳐낸 그는 1950년대 ‘흑색시대’, 1960년대 ‘황색시대’ 시리즈를 통해 분단시대 실향민으로서 망향 정신을 담아냈다.

최 화백의 1984년작 ‘낙원’은 따뜻한 황토색으로 한국적 해학미를 가미해 ‘건강한 에로티시즘’을 구현한 작품이다. 머리에 과일 바구니를 이고 있는 여인이 벌거벗은 남자의 뒷모습을 힐끔 훔쳐보는 분위기를 해학적으로 묘사해 에로티시즘의 격조를 높였다. 화면 전체에 흩날리는 꽃잎과 어우러져 율동감마저 느껴진다. 입체감이나 원근법을 무시한 채 선묘와 황톳빛 질감으로 두 남녀의 어색한 만남을 풀어낸 게 이색적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