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동물가죽 포장이 통했다…사업은 곧 혁명
2010년 7월, 스코틀랜드의 작은 맥주회사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독한 맥주를 만들었다. 알코올 함량이 55%나 됐다. 특이한 점은 도수만이 아니었다. 담비와 다람쥐 가죽으로 병을 감싼 이 맥주는 단 11병만 만들어졌고, 500~700파운드(70만~100만원)에 판매됐다. 펑크를 좋아하는 27세 청년 제임스 와트와 마틴 디키가 장인정신을 담은 크래프트(수제) 맥주를 만들기 위해 설립한 회사 브루독 이야기다. 맥주의 이름은 ‘역사의 종말’로 지었다.

동물 사체로 병을 감싼 충격적인 포장은 관습과 금기를 깨기 위해서였다. 이후 ‘크래프트 맥주계의 종말론적 이단아’라는 별명을 얻은 브루독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식음료 제조사이자 레스토랑 운영사가 됐다. 설립 당시 2명이던 직원은 580명으로 늘어났고 핀란드 헬싱키, 일본 도쿄, 이탈리아 로마 등 15개 도시에 바를 열었다. 50여개국에 맥주를 수출하고, 매출의 절반 이상이 해외 사업에서 나온다.

브루독 공동창업자인 제임스 와트가 쓴 《창업의 시대, 브루독 이야기》는 맥주를 내놓은 지 5년 만에 ‘맥주산업의 혁명’을 이뤄낸 브루독의 성공 비결을 담고 있다. 신규 사업체의 80%가 18개월 안에 망하는 현실에서 브루독은 1970년대를 주름잡은 펑크 정신으로 무장해 맥주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관습에 도전했다.

와트가 말하는 성공 비결은 “사업이 아니라 혁명을 시작하라”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면 망하지만 혁명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2011년 그는 자신의 바에서 3분의 2파인트 크기 잔에 맥주를 제공하기 위해 특이한 시위를 시작했다. 난쟁이들을 동원해 국회의사당 앞에서 ‘모두를 위한 작은 잔’ ‘크기는 중요합니다’ 등의 피켓을 들고 허가법 폐지 캠페인을 벌인 것. 시위 끝에 허가법은 개정됐고, 3세기 만에 크래프트 맥주의 용량 기준에 변화를 일으켰다.

또 다른 혁명은 ‘크라우드 펀딩’에서 시작됐다. 2009년 자금을 모으기 위해 두 사람은 ‘에쿼티 펑크’라는 이름의 웹 사이트를 열어 크라우드 펀딩에 나섰다. 7개의 법률회사가 불가능한 계획이라고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1940년대에 만들어진 탱크를 빌려 브루독 로고를 붙인 뒤 영국은행과 런던증권거래소 밖에 세워뒀다. ‘기존 시스템을 무너뜨린다’는 의미였다. ‘에쿼티 펑크 4’는 2주 만에 500만파운드가 넘는 투자금을 모았다.

에쿼티 펑크 모델이 재정적 측면에서만 도움을 준 것은 아니다. 투자자 대부분이 맥주 애호가였고, 투자 이후 충성스럽고 헌신적인 브랜드 홍보대사이자 크래프트 맥주 전도사가 됐다. 와트는 “마케팅 성공비결은 펑크의 방식으로 고루한 업계를 뒤흔드는 것, 그리고 고객을 팬으로, 팬을 홍보대사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대다수 펑크그룹이 그런 것처럼 ‘완전한 자족정신’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컨설턴트, 마케팅 대행사, 인력 알선업체는 모두 신생기업의 정신과 재정에 해를 입힐 뿐이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가격을 후려치다 보면 자신의 뒤통수를 후려치게 된다 △블로그라는 사원을 경배하라 △제품을 팔지 말고 정보를 팔아라 등 초기 창업자들이 참고할 만한 조언이 많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