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이자 소설가인 송숙영 씨가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단풍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범준기자 bjk07@hankyung.com
서양화가이자 소설가인 송숙영 씨가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단풍나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범준기자 bjk07@hankyung.com
“어릴 적 유난히도 색감의 유혹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내 모습을 되찾은 느낌이에요. 그때 손목 너머 캔버스에 수놓은 세상이 다시 화폭에서 움트고 있어요. 붓을 쥐면 싱그러운 옛 추억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원로 서양화가 송숙영 씨(81)의 얘기다. 그는 “그림에 빠졌던 소녀 시절의 내 모습을 생각하며 힘이 닿는 데까지 붓을 놓지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소설가이기도 한 송씨는 화단의 ‘문화인(文畵人)’으로 불린다. 이화여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196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장편소설 《강남 아리랑》(전3권) 《긴꼬리딱새 날다》 《야성의 숲》 등 20권을 출간했다. 2006년에는 단편집 《가시나무 숲》으로 최우수 도서상을 받았다.

1960년대 후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4년간 유화를 공부한 그는 신미술대전 대회장상을 비롯해 단원미술제, 신사임당미술대전, 남농미술대전, 중경아세아미술대전 등에서 상을 받으며 화가로서의 재능도 보여줬다. 최근에는 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연과 일상을 붓질하며 작품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3년 만에 연 이번 전시의 주제는 ‘하늘로 높이 날아라’. 문학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경험한 애틋한 사랑과 이별, 기쁨, 즐거움 등 갖가지 추억을 때 묻지 않은 자연과 함께 화면에 응축해낸 근작 20여점을 걸었다.

그는 늘 지혜와 부를 상징하는 ‘부엉이의 눈’으로 세상과 만난다. 유년 시절 마음의 창에 각인한 풍경을 부엉이의 시각으로 반추하고 되살려낸다. 작품에 부엉이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최초의 갈대’를 비롯해 ‘파란 달’ ‘감이 익어가는 나의 마을’ ‘피크닉’ 등의 작품에선 어릴 때 경험한 행복, 조화, 고요, 평온, 서정 같은 추억을 마치 일기를 쓰듯 잡아냈다.

“부엉이의 눈을 통해 세상과 자연을 배우고 있어요. 특히 순진무구한 자연과 마주할 때는 어떤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첫 감정, 첫사랑의 느낌이 스며들더군요. 산과 바다, 들, 꽃, 나무 등과 교감하다 보면 현실의 복잡한 생각은 사라지고 짜릿한 예술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해맑은 자연을 표현하노라면 그윽한 향기가 절로 피어오른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에는 삶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 은빛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서울 성내동 작업실에서 매일 다섯 시간 이상 작품에 매달리고 있다는 그는 “문학이 치열한 삶의 얘기라면 그림은 삶과 자연을 연출하는 연극 같은 장르”라며 “화단에서 ‘영원한 현역’으로 남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