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드푸르에 있는 메랑가르 성.
조드푸르에 있는 메랑가르 성.
언제나 그랬다. 인도란 나라는 무엇인가를 줄 것이란 기대. 현장이나 혜초 같은 승려들은 경전을 얻기 위해, 바스쿠 다가마나 콜럼버스 같은 상인들은 황금을 얻기 위해 인도로 떠났다. 인
[여행의 향기] 인도 가면 엄청 고생한다고? 나는 라자스탄주에서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다
도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콜럼버스는 결국 인도를 못 찾고 아메리카를 찾았지만 고생 끝에 인도를 찾은 이들은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었음은 우리가 역사책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1,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세계인들이 먹고살 만해지자 이번엔 부와 명성이 아니라 다른 것을 찾아 인도로 가는 발길이 이어졌다. 이제 수많은 사람이 인도를 찾지만 그들은 인도의 진짜 얼굴을 본 것일까? 델리와 뭄바이만 보고 인도의 전부를 봤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인도 서쪽 라자스탄과 조드푸르는 우리가 몰랐던 인도의 또 다른 얼굴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인도여행은 옛말

인도에 휴대폰을 보유한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될까? 인도통신관리위원회(TRAI)에 따르면 인도에는 13개의 이동통신사가 있는데 2015년 기점으로 이동통신 사용자가 10억명을 넘었단다.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만 올해 3억명을 넘을 거라는데 어마어마한 숫자다. 인도 인구가 정확히 얼마인지 통계를 내기는 무척 힘들지만(공식 집계로는 약 12억명으로 13억명가량의 중국 인구보다 적지만 실제로 인도 인구가 더 많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가입자와 판매량 수로 따지면 되니 이 통계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 터. 필자가 처음 인도 땅을 밟았던 2005년만 해도 인도에 휴대폰 단말기를 갖고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사이클 릭샤왈라(자전거 인력거꾼)마저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는 시대다.
항만도시 코친에서 만난 체게바라 그림.
항만도시 코친에서 만난 체게바라 그림.
이제 인도는 우리가 책이나 영화에서 봤듯 무소유의 땅이 아니다. 그리고 불편함을 응당 업보로 받아들이는 땅도 아니다. 지하철만 이미 11개 도시에서 운행되고 있고, 앞으로 지하철이 건설될 도시가 무려 120개나 된단다. 수도인 델리 인디라 간디 공항에 도착해서 우버(Uber)나 올라(Ola) 같은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으로 택시를 호출하면 순식간에 기사가 온다. 외려 ‘이거 너무 편리한 거 아냐?’란 생각에 인도를 예전부터 찾은 사람들은 서운한 마음이 들 지경이다.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과 사리를 입은 여성.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과 사리를 입은 여성.
그러니 인도여행을 하면 고생만 하고 온다는 생각은 편견이요. 고생 끝에 낙(깨달음)이 온다는 기대 또한 버리는 게 좋다. 한국에서 인도로 떠나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기까지 모든 이동편과 숙박편이 다 인터넷으로 예약되고, 어지간한 인도 호텔에서는 와이파이도 잘 터지기에 인도 맛집까지 검색해 찾아갈 수 있는 시대. 도시의 사람들은 류시화 시인이 만났던 거지처럼 ‘쿵’ 하고 심금을 울리는 우문현답을 던지지 않는다. 이제 정말 책에서 읽었던 인도다운 인도를 만나보려면, 그리고 뭔가 ‘인도다운’ 깨달음을 얻으려면 정말 지역을 잘 골라서 여행 계획을 짜야 한다.

마지막 남은 진짜 인도, 라자스탄

인도 라자스탄주에서 만난 시골노인.
인도 라자스탄주에서 만난 시골노인.
비틀스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북쪽인 리시케시를 찾았지만 21세기에도 인도다운 인도를 만나고 싶다면 서쪽으로 가보자. 29개의 주와 7개의 직할지로 이뤄진 드넓은 인도에서 가장 넓은 주인 라자스탄.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자스탄 주는 우리가 책이나 영화에서 봤던 인도인의 이미지가 여전히 살아있는 마지막 보고다.

중동 쪽에서 건너온 아리아 계열의 이주민이 살고 있는 라자스탄 주는 영토 대부분이 척박한 사막이라 예로부터 유목 생활을 해왔다. 그리고 기골장대하고 호전적인 무사들의 땅이라 인도를 통일한 무굴제국이 마지막까지 정복에 가장 애를 먹었던 곳이 이 라자스탄이었다. 라지푸트(무사)의 후예라는 당당한 자부심을 갖고 사는 터에 이 지역은 인근 구자라트 주와 더불어 인도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다.

무엇보다 그 덕분에 옷차림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인의 모습에 가장 가깝다. 커다란 붉은색 터번에 근사한 카이젤 수염을 기르고, 새하얀 셔츠와 바지에 알라딘이 신었던 것 같은 뾰족한 가죽구두를 신은 인도인의 모습은 지금도 고수되고 있는 라자스탄 주의 전통복장이다. 또한 라자스탄 주는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에서 “라자스탄을 떠나는 당신의 수첩에는 연락처가 빼곡할 것”이라고 기술할 정도로 여행자에 대한 호감과 친절이 강한 지역이다. 물론 인도 전역에 넘치는 사기꾼이야 왜 없겠냐만은 라자스탄 사람들이 다른 지역 인도인에 비해 유독 친절하고 정이 넘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바라나시의 고돌리아 사거리.
바라나시의 고돌리아 사거리.
라자스탄 주는 인도여행의 관문이 되는 수도 델리에서 접근성이 좋다. 심지어 이제는 고속도로까지 생긴 인도에서 가장 잘 닦여 있는 도로가 라자스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자이푸르와 델리를 잇는 구간이다. 자이푸르부터 시작해 조드푸르, 우다이푸르까지 라자스탄을 대표하는 3대 도시를 비롯해 낙타를 타고 사막 사파리를 할 수 있는 황금도시 자이살메르 등 라자스탄 주만 다 둘러보려 해도 보름 정도가 걸린다.

온 건물이 파랗게 칠해진 블루시티 조드푸르
 파란집으로 가득한 조드푸르의 한 소년.
파란집으로 가득한 조드푸르의 한 소년.
라자스탄 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한 곳 꼽으라면 조드푸르다. 그리고 인도를 처음 가는 사람에게 꼭 한 곳만 가보라고 추천한다면 그곳 또한 조드푸르다. 라자스탄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조드푸르는 척박한 타르사막의 한가운데 세워진 유목민의 왕국이다. ‘마르와르(Marwar)’라고 불린 이 강성한 왕조의 15대 왕 라오 조다는 1459년 요새와도 같은 메헤랑가르 성을 건설했고 이 성을 중심으로 지금의 조드푸르가 생겼다.

인도 푸쉬카르 낙타축제에서 신의 모습으로 분장한 사람.
인도 푸쉬카르 낙타축제에서 신의 모습으로 분장한 사람.
할리우드 영화인 ‘다크 나이트’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을 비롯해 한국 영화인 ‘김종욱 찾기’에까지 많은 영화에 등장한 조드푸르가 유명한 것은 온 건물이 파랗게 칠해진 올드 시티 덕분이다. 힌두교 3대 신 중 하나인 시바신은 몸이 파란데 옛날에는 시바신을 모시는 브라만들만 집에 파란색을 칠할 수 있었다고. 바위산에 지어진 메헤랑가르 성에 올라 이 블루시티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파란색 물결이 춤추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도를 찾은 수많은 여행자가 이구동성으로 가장 좋았던 곳으로 이 블루시티를 꼽는 이유다.

조드푸르와 연계해 찾으면 좋은 곳은 차로 사막을 끝없이 달려 5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자이살메르다. 자이살메르는 황토빛 사암으로 지어진 진정한 사막 도시. 해가 뜰 때나 질 때 도시의 성과 건물이 황금빛으로 빛난다고 해서 골든 시티라고도 불린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자이살메르 성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자이살메르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사막 사파리다. 도시를 감싸고 있는 드넓은 타르 사막 중 모래 언덕이 좋은 곳을 찾아 당일치기든, 1박이든, 아니면 1주일이든 낙타를 타고 사막을 만날 수 있다. 버킷 리스트에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적어 놓은 사람이라면 꼭 이 자이살메르를 기억하도록 하자.

세속적인 여행의 즐거움을 얻으면 어떠하리

라자스탄 주를 인도에서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추천하는 이유는 라자스탄 주에서만 묵을 수 있는 호사스러운 숙소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물가 상승 곡선이 하늘을 찌르는 인도에서 숙박만큼은 여전히 저렴하다. “인도는 숙박비가 무지 싸더라”는 말은 거짓말이 아닌 셈. 특히 라자스탄 주에는 옛 왕족이나 귀족의 저택을 개조해 만든 헤리티지 호텔이 많다. 문화재급의 고풍스러운 건물에서 버틀러(집사)들의 지극한 접대를 받으며 느긋하게 수영까지 즐길 수 있는 4~5성급 호텔들이 한국 고급 모텔 사용료 정도다.

우다이푸르의 호텔인 레이크팰리스
우다이푸르의 호텔인 레이크팰리스
예산을 1박에 300~400달러 정도로 과감하게 늘리면 세계 10대 호텔 리스트에 항상 이름을 올리는 자이푸르의 롬복, 우다이푸르의 레이크 팰리스나 오베로이 우다이빌라스, 조드푸르의 우메이드 바완 같은 최고급 궁전호텔에서 왕 같은 하룻밤도 보낼 수 있다. ‘인도여행은 고생길’이라며 망설였던 사람도 귀가 솔깃할 정보일 게다.

생각보다 지극히 세속적인 인도. 인도에서 어떤 것을 얻어오든 그것은 여행자의 자유요, 불확실성이란 여행의 최대 매력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인도여행도 얼마든지 고생스럽지 않고 편하게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아마 그렇게 다녀온다면 우리가 풍문으로 들어왔던 인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만나고 올 것이다.

고라크푸르=글·사진 김경우 여행작가 ichufs@naver.com

여행메모

한국에서 인도로 가는 편은 무척 많다. 국적기로는 아시아나항공이 수도인 델리로 직항을 운행하는데 올해 7월부터 주 5회로 늘렸다. 인도 국적기인 에어인디아도 주 5회 인천공항에서 델리 인디라 간디공항까지 홍콩을 거치는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다. 한국에서 인도는 비자를 받아야 입국할 수 있다. 비자 서류를 받는 절차 또한 악명 높았는데 2014년 4월부터 인도 도착 공항에서 비자를 간소하게 받을 수 있는 비자협정국가에 한국이 포함돼 전자비자를 받아 간편하게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전자 비자 발급 비용은 49달러다. 워낙 넓은 인도기에 지역마다 최적기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지역은 겨울철이 여행 적기다. 가장 여행을 피해야 할 시기는 4~7월. 한낮의 온도가 50도에 육박하는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최적기는 11~2월이며 3월부터 힌두력의 새해가 시작되는데 이때부터 더워지기 시작한다. 7~8월은 몬순 시즌으로 비가 많이 온다. 히말라야 산맥이 있는 북부의 잠무 카슈미르 주나 시킴 주,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는 눈이 녹는 7~8월이 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