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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 미국과 유럽의 예술계를 주도한 미국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1874∼1946)의 독특한 자서전이 번역 출간됐다. 출판사 연암서가가 출간한 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이다.

제목과 달리 실제로 책을 쓴 사람은 토클라스가 아니라 스타인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나’로 등장하는 화자는 토클라스지만 중심 내용은 스타인과 그를 둘러싼 예술 세계다. 토클라스가 스타인과 함께 보낸 25년의 세월을 1인칭 작가 시점에서 풀어내는 형식을 취한 것. 결과적으로 스타인은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친구인 토클라스의 목소리를 빌려 자서전을 썼다. 스타인은 단순히 토클라스의 이름만 빌린 것이 아니라 평소에 토클라스가 쓰는 말투를 그대로 흉내 내 토클라스가 실제로 보고 듣고 느낀 경험인 것처럼 꾸몄다.

얘기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인 토클라스가 프랑스 파리에서 스타인을 만날 때부터 시작된다. 스타인은 이 책에 자신의 천재성을 토클라스가 처음부터 알아봤다고 자화자찬을 한다. “이런 말을 해도 좋다면, 내가 평생 만난 천재는 세 명뿐이며,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처음 본 순간마다 내 안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는 것, 그 소리에는 어떤 실수도 없었다고 말하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세 명의 천재란 거트루드 스타인,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앨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다. 나는 수많은 주요 인사와 여러 위대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내게 첫째 가는 천재란 오직 이 세 사람뿐이며, 그들을 처음 만날 때 내면에서 어떤 울림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저자는 토클라스가 스타인의 집에서 만난 피카소와 세잔, 마티스 등 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이 화가들은 후일 불후의 명작을 남겼으나 당시엔 아직 무명 화가였다. 스타인은 당시 젊은 작가였던 헤밍웨이에게 문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토클라스와 함께 1930년 ‘플레인 에디션’이라는 출판사를 차리고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햇다. 스타인이 파리로 넘어오기 전 어떤 과정을 거쳐 예술에 흥미를 갖게 되는지도 책에 나온다. 그는 187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오빠를 따라 존스홉킨스의대에 입학한다. 그러나 의학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화가의 꿈을 안고 파리로 떠나겠다는 오빠를 따라 1903년에 파리로 이주한다.

스타인 전기를 쓴 작가 도널드 서덜랜드는 이 독특한 자서전에 대해 “명쾌하고 탄탄한 구성의 일화로 가득 찼으며 앙드레 지드나 헤밍웨이보다도 훨씬 더 선명하고 아름다운 서술체로 쓰였다”고 평가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