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김환기 화백의 추상화
한국적 서정을 세련된 모더니즘으로 승화한 수화 김환기 화백(1913~1974)은 한평생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한국 현대 회화의 독창성을 구축했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과 6·25전쟁 시기를 거쳐 파리시대(1955~1959년)에는 구상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줬고, 뉴욕시대(1963~1974년)에는 완전한 추상미학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974년 작고할 때까지 미국에서 활동한 그의 추상화에는 서구 모더니스트들의 냉랭하고 물질뿐인 올오버 페인팅, 색면파 추상, 미니멀 아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동양적 서정과 인생이 서려 있다.

뉴욕에서 1969년에 작업한 ‘15-VII-69 #88’은 십(十)자 형태의 기하학적인 성격이 뚜렷한 색면추상화다. 화면을 대칭 형태로 분할하고 중앙에서부터 붉은색, 황색, 노란색을 차례대로 수놓았다. 색과 선들이 서로 교차하며 입체감과 신비로움을 함께 전한다. 푸른 선들은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광활한 자연과 우주를 감싸는 듯하다. 서양적인 화법으로 농담과 번짐, 스며듦 같은 전통 수묵화의 발묵 효과까지 우려내 동양적인 우주관을 살려내려 고심한 흔적도 엿보인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