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배꼽 - 길상호(1973~ )

[이 아침의 시] 향기로운 배꼽 - 길상호(1973~ )
흰 꽃잎 떨어진 자리
탯줄을 끊고 난 흉터가
사과에게도 있다
입으로 나무의 꼭지를 물고
숨차게 빠는 동안
반대편 배꼽은 꼭꼭 닫고
몸을 채우던 열매,
가쁜 숨도 빠져나갈 길 없어
붉게 익었던 사과 한 알,
멧새들이 몰려와
부리로 톡톡 두드리다가
사과의 배꼽,
긴 인연의 끈을 물고
포로롱 날아간다

꽃 진 자리에 사과가 열립니다. 사과 꼭지 반대편 움푹 파인 곳에 시인은 배꼽이라는 신기한 이름을 붙여줍니다. 탯줄을 끊고 난 흉터. 잘 익은 우리 몸의 중심에도 있지요. 배꼽을 만져봅니다. 어머니의 젖을 숨차게 빠는 동안 우리는 사과처럼 배꼽을 닫고 몸을 채우던 열매가 되었고, 모체와 분리되어 이 세상에 던져졌습니다. 원초적 생명의 근원인 사람의 배꼽이 탯줄에 연결되어 있었던 시간처럼, 향기로운 사과의 배꼽은 사과나무와 긴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거군요.

김민율 < 시인 (2015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