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세 요절한 천재 여성화가의 '색채마술'
평생 독신으로 살며 불꽃같은 예술혼을 불태운 천재 여성 화가 최욱경 화백(1940~1985·사진). 마흔다섯에 요절해 예술의 꽃을 다 피우지 못한 비운의 화가다. 1985년 7월 과음 후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인한 심장발작으로 유서 한 장 없이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 김기창, 김흥수 등 유명 화가에게서 그림을 배운 그는 서울대 미대 졸업 후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가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와 브루클린미술관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뒤 프랭클린피어스대 조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 초 일시 귀국한 것을 제외하면 1978년까지 미국에서 10여년간 활동하며 대담하고 화려한 색과 분방한 필치로 자연의 생명력과 여성의 정체성이 두드러진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현대 추상미술 유파 가운데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국내 화단에 처음으로 도입해 이름을 날렸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최욱경 화백의 1966년 작 ‘화난 여인’. 국제갤러리 제공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최욱경 화백의 1966년 작 ‘화난 여인’. 국제갤러리 제공
다음달 30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최욱경 개인전’은 1963~1978년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가 작품에 쏟아부은 애정과 공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미국 시기(American Years 1960s~1970s)’란 부제가 붙은 이번 전시에는 1960~197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추상표현주의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작품과, 1968년을 전후로 베트남전쟁 등에 대한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 등 70여점을 풀어놓았다. 잭슨 폴록과 윌렘 드쿠닝, 마크 로스코 등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화풍을 적극 수용하면서 끊임없는 실험과 시도를 통해 이를 한국적 미감으로 체화시킨 작품들이다.

전시장에선 짧은 생애 동안 스스로를 강철처럼 담금질하며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찾아나선 여성 작가의 열정과 예술혼을 만날 수 있다. 장판지, 문창호지, 먹 등의 재료를 활용한 1970년대 작품에선 한국의 전통적인 색감과 미국 서남부 뉴멕시코주의 자연에서 받은 영감이 녹아 있다. 1976년 뉴멕시코 라스웰미술관의 지원으로 그곳에 머물던 작가는 낯선 이국땅을 돌아다니며 맡은 냄새, 소리, 사람들을 율동성이 살아 있는 곡선과 밝고 부드러운 색채로 잡아냈다. 1971년부터 3년간 일시 귀국해 공부한 서예와 민화 등 한국적 조형 미감도 더했다.

형태를 완전히 해체하기보다 형상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구상과 추상의 접점을 탐구한 흔적이 진하다. 그가 생전에 “미국 추상표현주의는 즉흥적이고 표현도 자유스럽지만 허무감이 느껴져 추상표현주의를 염두에 두면서도 형체를 찾아보려 했다”고 한 말이 실감난다. 자유분방한 붓질과 강렬한 원색으로 외양과 내면의 정신세계, 동양과 서양, 빛과 어둠, 사랑과 증오, 행복과 고뇌, 참과 거짓 등 대립되는 양극의 두 세계를 포착하려 했던 작가의 굴기가 다부지고 옹골차다.

1960년대 말 미국인들의 정체성 혼란에 대한 비판을 추상미술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들도 주목된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을 비롯해 인종 차별과 흑인 폭동, 베트남전쟁 등 역사적 사건에 대응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선의 리듬감과 색채로 풀어냈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불안과 절망, 무기력증을 조형언어로 되살려낸 촉수가 화면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빨강과 초록, 노랑, 검정을 거침없이 풀어내며 미국 사회의 그늘을 포착한 그의 열정이 돋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예술감독은 “최욱경은 당시 한국 미술계를 지배하던 단색화나 아방가르드 외에 제3의 미술 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자기 자신조차 색을 통해 해석하려 했다”며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고인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제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최 화백의 예술적 실천을 지속적으로 조명하는 한편 그의 전작 도록(카탈로그 레조네)도 출간할 예정이다. (02)735-844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