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커튼 뒤에서 기업 움직이는 미국 사모펀드
제이슨 켈리는 2011년 어느 날 아들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고랜드를 찾았다. 그는 이곳에서 불현듯 이런 생각을 했다. “레고랜드는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블랙스톤 소유다. 숙소인 힐튼호텔 역시 블랙스톤의 것이고, 숙소에서 레고랜드로 이동할 때 이용한 허츠렌트카는 사모펀드 운용사 칼라일과 클레이튼두빌리어앤드라이스가 공동으로 인수해 경영하고 있다. 레고랜드를 돌아다니며 어디에서 돈을 쓰든 모두 사모펀드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사모펀드는 소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투자 상품이다. 비공개로 투자자를 모집해 정해진 목표 수익률을 추구한다. 사모펀드는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1일 국내 사모펀드 약정액이 처음으로 60조원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국내 사모펀드가 2005년 약정액 4조원으로 출발한 지 11년 만이다.

사모펀드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두 배 이상 차이 나던 공모펀드 시장 규모마저 추월했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사모펀드 순자산 규모는 228조9040억원으로 공모펀드(227조9291억원)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그런데도 여전히 금융업의 변방에 있는 분야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일반 대중이 관심을 갖기 힘든 영역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거물들》은 현대판 ‘오즈의 마법사’로서 커튼 뒤에서 기업을 움직여온 미국 사모펀드의 비밀을 공개한다. 책을 쓴 켈리는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 기자로 활동하면서 2007년부터 사모펀드업계를 취재했다. 그는 미국 사모펀드의 과거와 현재를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그룹 회장, 데이비드 본더만 텍사스퍼시픽그룹(TPG) 회장,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그룹 회장 등 창업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냈다. 그들은 창업 이전에 이미 성공적인 경력을 자랑했지만 기존의 경력을 뒤로하고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소수만이 볼 수 있는 무엇인가를 내다봤기 때문이다.

루벤스타인은 시카고대 로스쿨을 나온 뒤 워싱턴 정계에서 탄탄대로를 걷다가 법률회사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한 투자회사의 기업 인수합병(M&A) 건을 접한 그는 직접 사모펀드를 차리기로 결심한다. 루벤스타인은 매년 250일 이상을 잠잘 시간조차 없이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투자자를 만나며 칼라일을 키워냈다.

사모펀드 창업주들은 때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슈워츠먼은 종종 기사에서 “후기 자본주의의 천박한 타락을 상징하는 인물” “세계에서 가장 특출나게 혐오스럽고 제 잘난 멋에 취해 사는 얼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저자는 사모펀드산업을 10대 청소년에 비유한다. 가능성은 넘치지만 때로는 무모하고, 자만심과 자기 불신 사이를 오가는 사춘기적 기질이 넘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사모펀드를 무시하거나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한다. 사모펀드는 매일 마시는 커피의 가격에도, 출장지 호텔의 침대 시트에도, 퇴직 후 매달 받는 연금의 액수에도 모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업계 인사의 말을 빌려 “사모펀드는 그저 존재할 뿐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고 결론 내린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