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상처·갈등 통해 읽어낸 현대인의 삶
소설 《덕혜옹주》로 유명한 권비영 작가(사진)가 새 중·단편 소설집 《달의 행로》(북오션)를 냈다. 권 작가가 중·단편소설집을 낸 건 11년 만이다. 그는 “단편은 대중적으로 많이 읽히지 않으니까 책으로 내기 어렵지만 다양한 소재로 늘 단편을 쓰고 있다”며 “그동안 써둔 작품이 많지만 책을 너무 두껍게 낼 수는 없어 이번에 다섯 편만 추려서 냈다”고 설명했다.

수록된 작품은 모두 가족 구성원 간 주고 받는 상처와 갈등에 대한 얘기를 담고 있다. 가족은 많은 사람에게 삶의 의미가 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희생에 다른 구성원이 기대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그는 이렇게 희생되는 존재들에 대한 연민을 원동력 삼아 작품을 썼다. 이런 고민을 통해 삶을 사는 바람직한 자세는 뭔지 고민해보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타인을 읽어내는 일이 곧 나를 읽어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곧 인생을 읽어내는 것이며 인간을 읽어내는 일이며 인간의 역사를 쌓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첫 번째 수록작 ‘산동네 그 집에서 있었던 일’은 어머니가 억척스럽게 살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아버지는 이상만 좇으며 선비처럼 사는 인물로 경제활동을 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표제작 ‘달의 행로’는 가난한 집안의 막내 여동생이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돈을 벌다가 화류계로 빠지는 과정을 그렸다. 스스로 희생을 택한 여동생의 삶은 희생을 강요하는 부모의 압력을 물리치고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는 맏딸과 대비된다.

작가는 “여동생이 희생해서 오빠를 공부시켰으면 오빠가 고마워하고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데 희생한 동생이 오히려 가족 내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며 “가족이 상처 내지는 배신의 아이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끝까지 챙겨야 할 건 나 자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며 “내가 바르게 탄탄하게 살아야 원만한 가족관계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주의적 문제의식도 소설을 쓰는 데 한몫했다. 작가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남성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여성이 희생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여성이 소외되고 배제된다”며 “소설로 그런 문제의식을 던져보면 어떤 반응이 올까 궁금해하며 썼다”고 덧붙였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